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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아기보살 잠재우기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일전에 한국에 있는 형님이 첫 외손자를 봤다며 이메일로 아기 사진을 몇 장 보냈는데 한 눈에 우리 집안 핏줄이라는 게 확 끼치며 나를 한참이나 동물적인 감각 속에 빠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법당에 누가 갓난아기라도 안고 오면 참으로 향긋하고 귀여워서 체면 불구하고 한 번 건네받아 안아 보고 싶어지는 게 나도 어느새 나이자랑 할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조짐인지.

스님의 고매한 법문을 알아들을 리 없는 천진법사 아기보살이 처음엔 입술만 삐죽거리다가 포대기에 누운 채로 팔을 휘젓고 얼굴을 붉으락거리는 게 영 심상치가 않으시다.

마침내 참다못한 아기보살이 대성일갈 '그 무슨 말씀인고!' 고주파의 '할'을 '삐익~삑' 연거푸 터뜨리면 옆에 앉았던 아기 아빠가 놀라 당황하여 대신 얼른 포대기 째로 모시고 나가 뒷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오히려 흐뭇하고 정겹다.

뱃속의 아기는 열 달 내내 엄마의 심장이 뛰는 규칙적인 소리를 듣고 자라다 바깥세상에 나온다. 배가 고프면 울고 몸이 불편해도 경고음을 울리지만 엄마가 심장의 박동소리대로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 주면 어느새 평온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든다.

강약 이박자의 자장가를 심장 박동과 같은 빠르기로 낮게 흥얼거려도 좋고 엄마의 심장이 있는 왼 가슴 쪽으로 아기를 보듬고 있으면 더 효과가 있단다. 아마 조용한 목탁 소리도 좋을 것이다.

나이가 한참 들었든 죽음이 코앞에 닥쳤든 우리는 사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아기와 같다. 그 동안 저 시끄럽고 뻑적지근한 시장통이나 골목의 먼지 구덩이에서 놀다 왔지만 마지막엔 그 옛날 뱃속에서 들었던 엄마의 심장 고동소리에 파묻혀 포근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하기야 요즘은 입는 것이며 행동하는 것이며 나이 들수록 더 알록달록 젊은이 흉내를 내기도 한다니까 안 그러실 분도 혹 계실지 모르지만.

그런데 우리를 토닥여 줄 이러한 육신의 어머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이 세상에 머물러 주시지를 않는다. 백중마다 재를 지내고 추석 성묘를 빠뜨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살아오시지를 않는다. 이 자리를 공평하게 메워 주실 분이 누구시던가? 삼계도사 사생자부 온 세상을 이끄는 스승이시요 온 생명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부처님이 아니신가!

이렇듯 우리의 어머니요 아버지이신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토닥이고 안심시키시며 우리가 울고 보챌 때 포대기에 싸안고 나가 달래 주시는 분이라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 뭐든지 동생보다 가진 개수가 많아야 하는 이기심의 황제요 어리석은 독재자 공깃돌은 발로 차 흩어 버리고 팔짝팔짝 뛰고 노는 고무줄은 끊어 먹고 달아나는 심술꾸러기에다가 개구리든 잠자리든 아무 거나 재미삼아 찢어 죽이는 잔인한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던가?

그런 아이로 태어나 그런 또래와 어울려 놀며 골목에서 뒹굴고 다투다 다쳐 울며 돌아와도 그 생채기 감싸 주시며 포근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지의 고동소리 들려주시는 분이 부처님이시다.

불교가 있어야 할 이유 종교의 가장 중심 되는 본연의 존재 이유가 이것이 아니던가? 앞으로 골목에 나가 놀 때는 어떻게 하라 동무들과 어울릴 때는 어떻게 조심하며 잘 놀 것인가 하는 타이름은 그 다음 얘기다.

그런데 세상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아이를 달래기는 커녕 곧 이 세상이 끝장날 듯이 겁을 주어 울부짖게 만드는 일도 없지 않다. 중생을 안심시키는 것 그 얼마나 큰 공덕일 것이며 중생을 제 맘대로 겁주는 것 그 얼마나 크나큰 업보를 받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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