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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그린 뉴딜' 과 '뱀기름'

박용필/고문

중국인들의 이민은 1800년대 중반 대륙을 잇는 철도공사로부터 시작됐다. 바위 산을 깎아내고 쇳덩이를 들어 철로를 깔아야 했으니 불도저나 포크레인이 없던 시절 중국인들이 겪은 육체적 고통은 상상을 넘어섰다. 비교한다는 게 무리지만 한국인들의 사탕수수 밭 이민은 그래도 양반이었지 않나 싶다.

당시 중국인들과 함께 철도 노역에 투입된 이민자들은 폴란드와 아일랜드계. 덩치 큰 서양인들도 며칠 공사판에서 일해 보고는 힘에 부쳐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달랐다.

피곤에 찌든 표정을 지었을 망정 다음날엔 어김없이 공사장에 나타나 삽과 곡괭이를 들었다.

얼마나 힘이 남아있길래…. 백인 감독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중국인들의 하루 일과를 눈여겨 본 그는 깜짝 놀랐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어깨며 무릎 등에 바르는 게 아닌가.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 곧 깊은 잠에 빠져든 중국인 노무자들. "옳거니 바로 저 약 때문이었구나." 감독은 통역을 불러 캐 물었다. 그 약은 '뱀기름'(snake oil)이었던 것.

소문은 꼬리를 물고 전국에 퍼져 나갔다. 동양에서 온 '신비의 영약' 또는 '만병통치약'으로 과대 포장돼 비싸게 팔렸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본토에서 가져온 뱀기름은 수량이 제한적일 수 밖에.

뱀기름을 대량생산해 시장을 선점한 인물은 클락 스탠리. 북미산 방울뱀을 약재로 사용했다. 중국산 보다 독성이 강해 약효가 뛰어나다며 광고를 해대 큰 돈을 번 인물이다. 식품의약청(FDA)이 발족하기 훨씬 전이어서 소비자들은 스탠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주문이 밀려 여러 곳에 공장을 세울 만큼 그의 제약회사 창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효과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아무리 바르고 또 발라도 통증은 여전해 고객들이 환불을 요구하고 나선 것.

졸지에 사기꾼이란 욕을 먹게 된 스탠리. 억울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는 의학지식이 짧아 중국산과 미국산 뱀기름의 차이를 밝혀낼 수 없었다. 결국 공장문을 닫고 말았다.

뱀기름 파동은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이후 '스네이크 오일'하면 '엉터리'란 말로 쓰이게 됐다. 시쳇말로 '짝퉁'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중국산 뱀기름도 가짜였을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건 진짜였다. 중국산엔 피부흡수가 잘되는 EPA란 성분이 40%가량 함유돼 있었다. 이게 윤활유 역할을 해 관절이나 어깨 결림에 상당한 효능을 발휘했던 것. 이에 비해 미국산 방울뱀엔 EPA가 5%도 안 돼 바르나 마나였다.

요즘 뜬금없이 '신 뱀기름'(new snake oil)이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이라는 녹색 에너지 산업 이른바 '그린 뉴딜'을 150여 년전의 '스네이크 오일'에 빗댄 말이다. 백악관이 내세운 청정 에너지 정책을 '엉터리'라고 봤는지 이를 21세기판 '뱀기름'으로 깎아내렸다.

차이나타운에선 그러나 뱀기름이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관절염.류마티스에 특효약이라는 문구와 함께. 비록 엉터리란 욕을 얻어 먹었지만 미국의 뱀기름 산업도 신약개발의 터전을 일궈냈지 않은가.

500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대체 에너지 산업. 그동안 경기침체로 없어졌던 일자리를 몇곱절이나 메우고도 남는 숫자다. 어쩌면 그린 에너지는 '엉터리'가 아닌 경제를 회생시킬 만병통치의 '뱀기름'으로 곧 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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