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초 서울에서는 ‘서울 카페쇼’가 개최됐다. 이번 쇼에는 한국은 물론 약 40개국 600여개 업체 및 단체가 참가를 했고, 사흘 간의 행사 기간 중 약 16만 5000명이 방문을 했다고 하니 미국이나 유럽에서 매년 열리는 SCAExpo에 비해 규모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았다.
행사 기간 중에는 ‘커피, 피플, 공유’를 주제로 커피 생산지와 소비지의 리더들이 모여 ‘월드 커피 리더스 포럼’도 개최됐고, ‘코리아 커피 리그’ 산하의 많은 경연대회도 열렸다. 또, 서울의 주요 커피 명소를 방문해서 한국의 카페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커피 투어버스’가 운영됐는데, 산지에서 온 농부들과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카페 문화를 소개할 수 있었다.
더욱이, 올해 행사에는 처음으로 로스터리 공동관인 ‘커피 엘리(Coffee Alley)’가 기획됐다. 세계 각국의 로스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본인들의 커피에 대해 소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운이 좋게도 내가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는 온두라스 현지 옥션 및 소규모 농가 지원 프로젝트인 오로 프로젝트도 이 ‘커피 엘리’에 초대 되었다. 사흘간의 행사 기간 중 서울을 방문한 온두라스의 커피 생산자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오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의 여러 로스터리 업체들이 오로 프로젝트의 부스운영을 적극 도왔다.
그런데, 이번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소비지와 생산지에서 바라보는 커피 시장이 달의 앞면과 뒷면을 보는 것과 같이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뉴욕에서 정해지는 커머디티 커피 가격인 C-Price가 파운드당 1.20달러인 점을 고려할 때, 커피 농가에서는 이 정도의 가격으로 커피 농사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이다. 커피 산지에서 온 농부들과 카페 쇼 기간 중 나눈 얘기 중에는 마음에 아프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카페를 같이 다니면서 커피 생산자들은 공통으로 한국 같은 소비지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이 5000원 정도 할 경우, 거기에 들어가는 커피 원가는 백원 이하일 것이라는 계산과 함께, 커피를 통한 부의 축척이 오로지 생산지가 아닌 소비지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본인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정당하지 않다 라는 생각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듯했다. 일단, 서울의 높은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얘기하면서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화려한 서울의 카페 문화에서 그들은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카페를 하는 사업주들도 직접 산지를 방문하거나 농부들과 얘기를 해본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농부들의 삶과 고민은 단지 먼 나라의 얘기일 뿐, 본인의 카페 운영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 다시한번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스페셜티 커피의 대형화
사실 스페셜티 커피라 불리는 제3의 물결의 커피는 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획일화된 커피에 대한 반발 작용에서 시작을 했다. 그래서 틈새 시장이었고, 그래서 독립 카페라고 불리는 작은 규모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이 그들만의 맛과 스타일을 가지고 소비자들에 어필을 해 왔다.
11월 중순 시카고에 스타벅스 리저브(Starbuck Reserve)가 세계최대 규모의 4층짜리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고 이번에 이곳을 방문했다. 스타벅스 리저브는 일반 스타벅스 매장과는 달리 싱글 오리진 커피를 제공하며, 기존에 스타벅스의 획일화된 프랜차이즈 커피와는 달리 전문 바리스타들에 의해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한다.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럭셔리한 세컨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매장은 시카고 다운타운 미시간 길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일단 들어 가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로 인해 20분 정도 건물 밖에서 줄을 선 후 입장이 가능했다. 3만5000스퀘어 규모의 4층 건물에 들어선 시카고 스타벅스 리저브는 매층마다 에스프레소 바를 가지고 있었고, 4층에는 칵테일 바와 브루잉 바를 가지고 있었다. 너무 사람이 많은 탓에 2층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1층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산미가 살아있고 뒷 끝에 열대과일의 향이 지속되는 맛있는 커피였다. 또한 같이 판매되고 있는 페이스트리(Pastry)들도 굉장히 맛이 있었다.
이미 개인적으로 스페셜티 커피는 과거에 비해 보편화 되었다는 생각을 해 왔다. 주변에도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님에도 비즈니스가 잘 되고 있는 커피 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서울 카페쇼와 시카고의 세계 최대의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을 돌아보고 나니 이제 스페셜티 커피 업계도 자본의 힘을 업은 대형화가 빠르게 진행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자본력이 충분치 않은 미주의 한인 카페 사업주들에게는 심각한 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든다. 커피 산지의 농부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스타벅스 리저브도 할 수 없는 최고 품질의 커피를 제공한다면 다양성 측면에서 소비자들은 꾸준히 작은 규모의 독립카페를 응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커피는 감동을 줄 수 있다. 규모와 시설에서 주는 감동보다 농부의 노고와 정성스럽게 커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와 로스터가 주는 감동이 소비자들에게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