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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리 경전' 번역한 일아스님, 부처님 말씀 직접 듣는 듯해요

Los Angeles

2009.02.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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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정혜사서 출판기념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요. 불교는 어렵다. 어렵기는 뭐가 어려워요. 빠알리 경전은 중학생도 이해해요. 너무 감동적이고 가슴이 뭉클뭉클해요."

일아스님이 부처님의 직설을 담은 초기경전을 발췌해 번역한 '한 권으로 읽는 빵알리 경전'(민족사)을 펴냈다. 초기경전을 배우겠다고 발원한 지 19년 미국에 유학온 지 17년 본격적으로 번역에 착수한 지 7년 만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140년 전에 빠알리 대장경 56권이 번역 출간됐어요. 일본에서는 60년 전에 완역됐고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전체가 번역되지 않았어요."

일아스님이 빠알리 경전에 몰두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부처님이었어요. 어떤 사람인지 뭘 가르쳤는지 그걸 알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알 수가 없어요. 한국 불교에서는 안가르치니까."

빠알리는 부처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쓴 말이다. 빠알리 경전은 구전되던 부처의 가르침을 사후 3개월 뒤에 1차 결집하고 100년 뒤에 2차 결집하는 식으로 채록해 BC 96년에 스리랑카에서 완성된다. 부처의 직설을 담은 초기 경전이다.

"빠알리 경전에는 부처님이 어떤 사람인지 다 들어있어요. 대승불경은 더 후대에 씌여진 것이어서 좀 희미해요. 문제는 한국 불교가 대승불교이다 보니 빠알리 경전을 등한시하고 후대의 (대승) 경전을 가르쳤어요. 공부도 안하고 학자도 길러내지 않아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한국 불교의 문제죠."

부처의 목소리에 목말랐던 일아스님은 우물을 파러 나섰다. 미얀마의 마하시 명상센터와 태국의 위백아솜 명상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부처가 목숨 걸고 수행했던 위빠사나 수행에 일아스님 역시 '여기서 수행을 끝내겠다'는 죽을 각오로 2년 동안 달려들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11시까지 4시간 자는 고행이었다.

문제는 영어로 번역한 경전을 주는데 읽어낼 수가 없었다. 제대로 배우러 미국으로 왔다. 종교학으로 유명한 뉴욕 스토니 브룩 대학에 들어갔다. "영어가 잘 안되잖아요. 발원했죠. 내가 어떻게 공부하는 건데 엉성하게 공부 안해. A학점 아니면 안받어. 4년 내내 같은 교수의 같은 강의를 두 번씩 반복해 들었어요. 강의는 모두 녹음해 달달 외웠어요." 결국 평균 -A 학점을 받았다.

유니버서티 오브 웨스트 대학원에선 두 명의 스승을 만났다. 한 명은 한국의 만해대상 수상자이기도 한 대승불교의 대가 랭캐스터 교수. 한 명은 빠알리 경전을 줄줄 외우는 소승불교의 최고 권위자인 아난다 구르게 교수였다.

일아스님은 이 책이 빠알리 경전의 요약이 아니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경전에서 알맹이가 되는 부분을 원문 그대로 번역했다. 몇 장 몇 절까지 다 표시했다.

"구전되던 부처님 말씀이라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걸 추리고 추려 알맹이만 뽑았어요. 또 경전에는 부처님의 일생과 자비 수행 등이 섞여있어요. 이걸 주제별로 나누어 모았어요."

원고가 완성되자 두 가지를 더 발원했다. 하나는 최고 품질의 책을 내는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책값을 싸게 하는 것이었다. 인쇄를 받지 않았다. 책은 불교 서적으로는 드물게 2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아스님의 다음 목표는 초기 불교에서 샛별과 같이 위대했던 아소카 왕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다.

'빠알리 경전' 출판 기념회는 정혜사(2885 West Ball Rd. Anaheim)에서 3월 1일 오전 11시 30분에 열린다.

▷문의 (714)995-3650

■일아 스님은…

대학 때부터 이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종교도 교리보다는 수도생활에 끌렸다. 스님과 수녀님 사이에서 수녀의 길을 택했다.수녀원에서 도서관 소임을 맡을 때 책을 통해 불교를 접했고 특히 법정 스님 책은 모두 읽었다.

계성여중고에서 교사로 소임할 때 잡무에 지쳐 회의가 일었다.

"아닌 걸 질질 끌려가면서 살지 않는 성격"이어서 원래 목표대로 수도생활을 하러 불교로 개종했다. 무작정 찾아간 법정 스님의 추천으로 석남사에서 출가했다. 개종에 대해 일아 스님은 "나는 지금도 가톨릭을 좋아한다. 그러나 다만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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