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어느 줄서기
전달수 신부/성마리아 엘리자벳 성당
그러다가 누군가가 새치기라도 하면 야단난다. 고성이 오가고 쌍소리가 터저 나온다. 귀성표를 사기 위해 서는 이런 줄도 있지만 또 다른 줄도 있다. 주택 청약표를 사기 위한 줄이다.
당첨이 되어야 하니 초초하고 긴장이 감도는 줄이다.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때 표를 구하기 위하여 줄을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마냥 기다려도 좋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명당 성당 안에 안치된 그 분을 보기 위한 조문 인파가 40만을 넘었다고 한다.
엄동설한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 2시부터 3킬로미터나 이어지는 긴 줄을 본 기자의 표현은 한 마디로 놀람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고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그 분의 얼굴만이라도 보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에게는 영하의 추위도 꼭두새벽도 상관없었다. 그 분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누워있는 그 분의 시신을 찾아 애도를 표했을까?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사실이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님의 죽음을 보고 다시 한 번 이 말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사무실 앞에 줄을 서는 것도 아니었고 배고픈 이들이 한 끼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선 줄은 더 더욱 아니었다. 단지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줄을 서게 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노인들이나 젊은이들 그리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누워계시던 추기경에게 이승에서 마지막 존경과 사랑을 드리기 위한 줄이었다. 그 대열에는 네 편 내 편도 없었고 새치기나 밀치기나 고함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위인을 보러 가는 기쁜 줄이었으니 이기적인 생각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분이 누구며 무엇을 하였기에 그 추운 겨울에도 그 분을 마지막으로 보고자 했는가?
그 분은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웅변가나 설교가도 아니었다. 그 분은 가르친 대로 사신 성직자이셨다. 대주교요 추기경이셨으니 가톨릭 교회의 종교 지도자였고 학생시절에는 "만일 조국이 나를 부른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라고 한 애국자셨다.
택시 기사들이 세상 민심을 가장 잘 안다고 한다. 어느 날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아래 위로 내 복장을 보던 기사 양반 왈 "천주교 신부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인가 하는 분 있지요.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시시하고 이기적이니 그 분 대통령에 출마하면 안 됩니까?" 교회에는 법이 있다. 그 법에 따라 성직자는 공직을 맡을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사의 말은 서민들을 대표하는 말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김수환 추기경님은 가셨다. 하지만 그 분의 유지는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민족과 개개인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는 보금자리가 있으나 머리 누울 곳조차 없이 청빈하게 사신 예수님처럼 살다 가신 추기경님의 삶과 그 분이 외치고 마지막까지 실천하신 정의 사랑 애국심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내려 실천할 덕목들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정신을 산다는 종교인들에게는 재물에 초연한 자세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외치는 정치가들에게는 진정한 애국심이 필요하다. 사기와 부정에는 정도를 고통에는 인내를 실망하는 이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신 추기경님 앞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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