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언제 놓아야 할까?
이원익/재불련 이사
그러니 덮어 놓고 분별하지 말자 놓아 버리자 할 것이 아니라 분별이란 게 뭐며 어떤 분별을 하지 말 것이며 무엇을 언제 어떻게 놓을 건지 제대로 알아야 우리 같은 아둔한 중생은 실행에 옮기려고 애라도 써 볼 것이다.
사실 무명 속에서 태어났다는 우리들의 인생 역정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지각이 들고 소견이 들면서부터 바깥세상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분별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이 다르고 여름이 겨울과 다른 철이라는 것을 분별하면서 우리는 철이 들었다.
어른이나 부모는 함께 장난치는 골목 친구와는 다르다는 것 좀 커서는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으니 잘 분별하여 그에 맞게 행동해야 실속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좀 철이 든 후다.
그러니 우리의 정신적 성장이나 자연 인문 사회과학 등 학문이라는 것도 한 마디로 나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삼라만상을 어떻게 잘 분류 분별하고 기억 활용하는가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지겹도록 받아들었던 그 많은 시험지들 긴장되는 면접들과 피하고 싶었던 성적표 인사고과들은 이러한 분별의 점검 과정이요 그 그림자들이다. 이것들을 무시하고는 세속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으니 교육을 잘 받고 스스로 자기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분별력을 잘 길러 두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사실 가르친다는 말은 헷갈리는 점을 잘 갈라서 잘 분별해서 말해 준다는 뜻일 게고 배운다는 말은 그런 가르침을 받아 서로의 차이를 환하게 밝히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가르치고 배운다는 점에서는 종교도 마찬가지다. 사슴과 말을 분별할 줄 알고 내 마음과 네 마음을 분별하여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 바보 소리를 면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별력은 세상을 좀 더 평화롭고 고루 잘 살게 만드는 방편이 되어야 바람직하다. 그늘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많음을 파악하는 분별력도 없다면 아둔한 것이고 혹시 그런 불행한 사람을 만나 나와는 관계없는 동떨어진 존재라 여기고 가까이 하기를 꺼린다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분별심이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있고 독립 된 별개의 개체로 보이지만 사실은 너와 나 사이에 무수한 인연과 연결이 있어 한 몸이나 다름없다 즉 동체대비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네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다르지만 사실 같다. 이것을 아는 것을 슬기라고 하고 지혜라고 하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반야 반야지다. 무얼 잘 가려내고 기억하는 분별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세상을 위해 분별력부터 잘 길러야 할 것이다. 세속적인 공부로 지식을 쌓고 부처님 공부도 또렷이 잘 해야 한다. 부처님 공부에는 글공부 몸공부 마음공부가 있겠지만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기지 말고 균형 잡힌 알음알이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그러한 알음알이에 끄달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음알이만 파먹고 살면 우리는 분별심에 사로잡히고 세상을 좋게 만들려던 방편이 목적이 되어 버린다. 언제 놓아야 할 것인가? 분별력이 분별심으로 되려는 찰나 우리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부처님 전에 엎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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