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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남부 민속춤 버지니아 릴

Atlanta

2009.03.1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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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처음 본 것은 1957년이었다. 콜럼버스에 있는 보병학교에서 고등군사반 통역장교로 복무할 때다.

애틀랜타 장로교회에서 한국장교들을 초청해 돌산, 사이클로라마, 코카콜라 박물관 등을 구경시켜주고 영화도 보여줬다. 그 후 그 영화를 대여섯 번이나 더 보고 소설도 서너 번 읽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버지니아 릴(Virginia Reel) 민속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민속춤은 남북전쟁(1861-65) 당시 버지니아를 비롯한 남부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춤이다. 영국 귀족들처럼 화려하고 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남녀가 두 줄로 맞보고 서서 추는 춤이다. 예쁜 남부미녀를 데리고 선두에 서는 남자가 리드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탐내는 남자들이 많아 경쟁이 심했다. 그날 파티는 병원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라 사회를 맡은 미드 의사가 여자들을 경매하기로 했다. 돈을 가장 많이 내는 남자가 여자를 골라잡을 수 있게끔.
"금화 150불!"이라고 렛 바틀러가 소리쳤다. 번쩍거리는 검은 양복에 주름진 흰 셔츠와 흰 보타이로 치장한 중년신사가 입가에 얄미운 미소를 띠고 나타났다. "어느 여자를 원하세요?" 미드가 무대에서 윗몸을 앞으로 기우리면서 물었다. "미시스 찰스 해밀턴"이라고 큰 소리로 답했다. "누구요?" 미드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반문했다. "미시스 찰스 해밀턴"이라고 반복했다. "미시스 해밀턴은 안 됩니다, 바틀러 선장님. 남편이 전사한지 얼마 안됩니다. 다른 애틀랜타 미녀들도 많은데 " "미드 의사님, 저는 '미시스 찰스 해밀턴'이라고 했어요""그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예. 하겠어요"라고 저쪽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시선이 그쪽으로 몰렸다. 해밀턴 여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긴 검은 상복으로 온 몸을 가렸다. 목도 손목도. "아이고 저런"하고 혀를 차는 여자도 있었다.
눈이 둥그러진 밴드 리더 리바이는 "버지니아 릴 파트너를 구하세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회색 남군군복을 입고 긴 칼을 찬 장교들, 테일코트를 입은 신사들. 나비같이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남부미녀들, 모두 흥분으로 들떴다. 남녀가 따로 두 줄로 맞보고 섰다. 남자들은 허리를 굽히고 절하고, 여자들은 무릎과 상체를 굽히고 맞절했다. 서로 뒷걸음으로 물러섰다. 밴드가 '딕시(Dixie)' 노래를 시작했다.

남녀가 서로 앞으로 걸어가 맞절하고 네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남자 줄 우단에 선 바틀러와 여자 줄 좌단에 선 여자가 대각선으로 접근해 가운데서 만났다. 앞으로 뻗친 손을 서로 맞잡고 실감개(reel)처럼 한 바퀴 돌고나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제자리에 서서 손뼉을 쳤다. 여자줄 우단에 선 미시스 해밀턴과 남자줄 좌단에 선 남자가 대각선으로 접근해 가운데서 만나 앞으로 뻗친 손을 맞잡고 실감개처럼 한 바퀴 돌고나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단에 선 남녀가 앞으로 뻗친 손을 맞잡고 빠른 옆걸음으로 왼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순간 장면이 변했다. 남녀 쌍쌍이 "언제나 이 잔혹한 전쟁이 끝나나?"란 왈츠곡에 맞춰 빙빙 돌며 춤추는 장면으로.

전쟁이 끝난 지 144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남부 민속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볼룸댄스 클럽 노인들이 영화에서 보는 남북전쟁 당시 의상을 차려입고 '버지니아 릴'을 재연했다. 영화를 다시 보는 듯했다. 화려한 의상과 환희에 찬 남인들 모습이 그 시절을 방불케 했다. 남군이 패배하자 남쪽 문화 전통 풍속이 남부를 휩쓸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버지니아 릴' 남부 민속춤은 아직 이곳 남부 심장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권태형 몬태발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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