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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3] '미국에 큰소리 친 적 있습니까?'

이동원 외무 '미군 철수 운운은 공갈'
'실리 최대한 얻어야' 박대통령 설득

월남파병의 주무부서는 당연히 국방부였다.

그러나 해외파병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특히 한국과 혈맹관계인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파병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한국의 안보와 경제적 실리라는 최소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국방장관이 아닌 국무장관이 나섰듯이 한국의 핵심 파트너는 외무장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동원 장관이 생전에 필자와 만났을 때 털어놓았던 회고담이지만 그는 파병을 앞두고 이른바 '브라운 각서'에 담길 핵심적인 실리를 얻어내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마주 앉아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앞서 언급했듯 박 대통령은 파병의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게 전쟁을 치르는 우방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 장관은 실리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맞서 언쟁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박 대통령의 그러한 생각이 순진하고 고상한 선비적인 심성 때문이라고 회고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설득에 박 대통령이 동의했다면서 '아주 애를 먹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이 6.25 때 우릴 도왔던 혈맹 아니냐 그런데 미국이 고독한 전쟁을 하고 있는데 조건 없이 도와줘야지 우리가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고 하면 되겠느냐 월남이 공산화된다면 동남아 지역과 한국의 안보도 위협받을 것이 분명한데 월맹을 제압할 수 있도록 무조건 도와야 하지 않느냐 이게 그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양심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돕지 않았을 때 미국이 주한 미군을 빼내 월남에 투입하면 당장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겠느냐 그것도 상당히 염려하셨지요.

그분이 생각하고 계신 걸 그렇지 않다는 논리로 설득하고 미군을 한국에서 빼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작전을 짜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참 애먹었습니다 하하. 어떤 사람은 뭐 김정렬씨가 나섰다느니 모 대사가 나섰다느니 그러는데 전혀 아니고 나하고 박 대통령하고 단 둘이 담판을 짓다시피 했던 겁니다. 이게 월남파병 초기 때 얘기요."

월남파병을 통한 한국 경제의 부흥을 위해 미국과 담판을 앞둔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 나눈 대화록을 이 장관이 회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면 당시 청와대 안에서 얼마나 깊숙한 밀담이 오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각하 김성은 장관(당시 국방장관)과 장기영 부총리한테 파병에 따른 득실과 경제적 실리에 대해 검토를 지시해 주십시오."

"임자(이동원 장관)는 득실 계산이 나오면 어떡하겠다는 게야. 임자한테 자꾸 맡겨 달라고만 하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내가 알아야 되겠어."

"각하의 심중은 제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미군이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며 한국전쟁을 도왔는데 은혜를 갚아야지 월남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거나 다름없는 미국을 상대로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씀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미국이 월남 전쟁을 수행하는 것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것이 국제 간의 손익계산서인데 파병에는 실리가 따라야 합니다. 국방장관과 부총리가 검토해 결론이 나오면 그걸 바탕으로 미국 교섭의 포지션 페이퍼를 작성해 해결을 보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미국이 곤경에 처했다는 걸 알면서 조건부 협상을 하겠다는 거 아니오 이 장관은!"

"각하 어차피 3차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우리의 젊은 장병들을 월남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입장이라면 외롭게 싸우고 있는 미국을 지원하면서 경제와 국방 외교 면에서 충분한 실리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저의 판단이고 계산입니다."

지금까지 끌려 다니기만 하던 한국 외교를 일시에 반전의 기회로 돌려놓을 수 있고 배짱을 부릴 수도 있는 찬스라고 본 것이 이 장관이었다. 그는 열변을 토했다고 했다.

"각하 전쟁을 잘만 이용하면 시베리아도 개발할 수 있고 중공대륙에도 당당히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일본이 한국전쟁을 이용해 경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많이 팔아 먹었고 얼마나 이익을 챙겼습니까. 그렇다고 욕을 먹었습니까? 그게 냉혹한 현실이고 실리외교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왕성한 힘을 가지고서도 끌려만 다니는 외교를 해서 되겠습니까.

왕성한 인력이 기업으로 보면 굉장한 담보물이듯 왕성한 전투력은 어떤 병기보다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담보가 됩니다.

우리의 왕성한 전투력이 아니라면 왜 콧대 높은 미국의 거물급들이 뻔질나게 한국을 찾아오고 야당 지도자들까지 찾아다니면서 기름기 흐르는 얄팍한 웃음을 보이고 그러겠습니까. 각하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지금까지 미국에 형님 대접 한번 받아본 적 있습니까? 미국한테 큰소리 한번 쳐본 적 있습니까? 그런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파병외교는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각하!"

"이 장관 우리가 실리를 조건으로 내걸면서 자꾸 흥정이나 하는 이미지를 주면 명분도 잃고 다 잃어. 미국은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빼내 월남에 투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단 말이오. 그걸 알아야지!"

"각하 그건 공갈입니다."

"뭐야?"

"정말 그런 생각을 한다면 미국은 아시아의 반공라인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건 미국의 절대적인 손실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때 왜 참여했느냐 하는 미국의 근본적인 명분마저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유엔 참전국 전체의 원성도 피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걸 미국이 모를 리 있겠습니까? 반공라인을 포기한다면 월남전에는 왜 참전을 했다는 겁니까?"

"그게 공갈이라는 소리는 임자가 첨이구먼!"〈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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