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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삶]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리 김/ANC온누리 교회

지금 우리 집 마당에는 커다란 오렌지 나무가 퍼트리는 꽃 향기가 요란하다. 한국에서 맡아보던 아카시아 꽃 향기 같기도 하고 미국의 쟈스민 향기 같기도 하다. 나는 하얀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꽃 향기 요란한 마당 오후의 오렌지 나무 그늘에서 두 손을 포개어 나무에 얹고 손등 위에 얼굴을 묻는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이렇게 불러본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는다. 어릴 적 숨바꼭질하면서 외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 주문대로 아주 천천히 부르고 돌아서면 어둑어둑해진 동네는 쓸쓸했다. 아이들은 혼자 도망가지 않고 여름의 태양까지 데리고 갔다. 거기 긴 갈래머리 소녀의 그림자도 사라지고 담벼락에는 두 손을 얌전히 포개고 눈을 꼭 감은 기다란 무궁화 꽃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얼굴을 감춘 작은 목소리가 무궁화 꽃잎을 세고 있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의 주인공인 어린 '에밀 싱클레어'가 거기 두려움으로 서있다.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때때로 기괴한 형태를 가진 자연물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마력 그 얽히고 설킨 깊은 언어에 온통 몰두하여 관찰했다."(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서)

나는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하면서 마당에 직원들과 함께 대추나무를 심었다.

햇살이 뽀송뽀송한 3월의 봄날이었다. 나무에 이름표도 달아 주었다. 대추나무는 아직 작달막하다. 나무엔 뽀쪽한 가시가 예민하게 곤두서있다.

누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지 쉽사리 매만지기 겁이 난다. 대추가 열리고 무성하던 잎도 졌다. 가시는 여전히 날카롭다. 연약한 나무를 보호하려나 보다.

연휴에 LA로 온 딸이 뉴욕으로 돌아가던 날 오후 나는 마당에 단감나무를 심었다. 2월 7일 토요일이었다.

단감나무에 거름을 주려고 참기름 집에서 깻묵을 두 포대나 사왔다. 사 온 깻묵을 흙과 골고루 섞어서 듬뿍듬뿍 나무 밑에 묻어주고 감나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잘 자라야 해~.' 나의 말을 하늘이 들었는지 올 봄에는 비가 풍성하게 '오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연의 변화를 존대어로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이제는 딸에게 그런 언어를 물려주고 싶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

봄볕이 골고루 배어있는 오후의 오렌지 나무 아래서 천천히 다시 불러본다. 뒤 돌아본다. 등 뒤에 따스한 봄 햇살도 그대로 멈추어 있다.

이제 겨울을 이겨내고 힘겹게 잎을 올려보내는 키 큰 늙은 단감나무가 위에서 미소로 내려다본다.

석류나무 가지가 도망치다 붙잡혀 숨을 헐떡거린다. 대추나무 밑에 숨은 수선화는 노란 머리카락을 미처 가리지 못했다. 이제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찾았다.

해가 지는 어둠에도 나의 그림자였고 나를 지키시던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는 손으로도 만져진다. 그는 한 번도 술래인 나를 혼자 두지 않으셨다. 그래도 나는 늘 외롭고 두려웠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 그 중심에 이르시되 /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 땅이 있을 동안에는 / 심음과 거둠과 / 추위와 더위와 / 여름과 겨울과 /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세기 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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