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4] '월남 문제로 각하 만날 생각마'

미국과 파병협상 유리하게 이끌려고
이동원 장관, 브라운 대사 불러 통보

"각하 절대 공갈입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뺀다는 건 시나리오조차 작성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보다 더 유능한 외교관들과 군사 전략가들이 워싱턴에는 득실거리고 있을 텐데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 공산괴뢰들이 반드시 남침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월남전 때문에 한국에서 미군을 빼고 극동지역을 포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내가 공갈이라는 것도 생각 못해서 우려하고 있었다는 소리구먼?"

"아이고 각하께서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갈이 아니라면 러스크 국무장관이나 번디 차관보 노레드 국무성 한국과장 같은 이들이 통사정을 하면서 서울에 와 달라고 해도 콧방귀만 뀌더니 부르지도 않는데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겠습니까. 심지어 서울의 브라운 대사는 급하게 워싱턴으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급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관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야."

"각하 외교는 찬스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번 기회에 국방경제 외교경제를 통해 충분한 실리를 얻어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협상하고 실리를 좇느냐에 따라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쟁복구만 해도 수송업체 건설업체 대규모 노동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 아닙니까. 우리가 파병하는 대신 월남전에 소요되는 막대한 군수물자와 일반물자까지 우리가 수출할 수 있도록 협상할 수도 있습니다."

"김용태 의원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먼."

"김 의원께서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매우 현실적이고 옳은 시각입니다 각하!"

"당신 너무 야박해!"

"저는 국제외교를 하는 외무장관입니다."

마침내 박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국회를 설득하고 소신껏 해보라는 하명을 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워싱턴으로 존슨 대통령을 만나러 가기 전 박 대통령과 작전을 세운 한 가지가 있었다.

"각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파병 문제 때문에 서울의 브라운 대사가 각하 면담을 요청하면 그 문제는 저하고 전부 협의하도록 해 주시고 만나주지 마십시오."

"대사를 만나주지 말라니."

"각하께서 대사를 만나주시면 그 친구가 저하고는 협상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버르장머리만 나빠질 것입니다. 그러면 일이 안 됩니다. 저는 브라운 대사를 통해 우리의 조건을 워싱턴에 전하도록 하고 그것이 수용되지 않으면 존슨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겠다고 통고할 생각입니다."

"존슨 대통령이 임자를 만나주겠어?"

"각하께서 브라운만 만나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면 존슨 대통령이 저를 만나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이 장관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외무장관으로서 철저히 실리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미국에 요구할 파병 조건이나 경제적 규모에 대해 박 대통령과 나눈 말씀이 없었습니까?

"없을 수 없지요. 미국에 여러 가지 국군 현대화니 경제 원조니 기업 진출이니 그런 걸 설명 드리면서 내가 처음에는 너무 엄청난 액수를 잡으니까 대통령께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시데요? 그렇게 하다가 인심만 잃고 아무것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말씀도 하시고.

그래서 내가 미군이 월남에서 쓰는 돈을 생각해 보시라고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요구하는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된다고 그랬지요.

그때 우리가 5만 6만 명 군대가 가지 않았어요? 근데 우리 장병 수만큼 미군 5만 6만 명이 월남에 갔다면 돈을 수십 배는 더 썼을 것 아닙니까. 그랬더니 대통령도 더는 말씀이 없으시고 너무 심하게 공갈치지는 말라고 하시더군 하하하."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받아내기 위한 이동원 장관의 전략과 배짱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에 '브라운 각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브라운 각서에 담긴 규정과 합의 내용에 근거해 파월장병들의 보수와 수당 한국의 모든 물자 수출과 기업체 진출 등이 결정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월남파병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도 반드시 배경이 되고 분석의 근거자료가 되는 것이 '브라운 각서'였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면담이 갑자기 차단되자 예상했던 대로 브라운 대사는 펄쩍 뛰고 난리를 쳤다. 미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가 박 대통령과 정무협의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외무장관에게 항의를 해 온 겁니까?

"하하하 그놈 자식이 보통 콧대가 아니었거든.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난감하게 됐다고 난리예요. 그만큼 미국 대사의 힘이 컸어요. 그렇지만 파병은 저들이 아쉬운데? 그래서 내가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한 방 놨어요.

당신이 정일권 총리도 만나고 김성은 장관도 만나고 부총리 야당 당수 다 만나고 대통령까지 만나겠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앞으로 월남 문제로 각하 만날 생각은 하지 마라. 어떤 경우가 됐건 나하고 협의를 해야지 각하와 합의를 봤다고 해도 그건 무효다. 파병은 외무장관이 오케이 안 하고는 어림없다.

그랬더니 펄펄 뛰고 말이요 외무장관이 대통령 위에 있는 거냐고 핏대를 올리면서 난리야. 그럼 마음대로 하라고 외무장관 오케이 없이 한국군 파병이 되는지 당신이 재주껏 해 보라고 하하하."

-수그러들었습니까?

"저들이 몸이 달아 있는데?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끝나는 게 아니라 확전되고 있었단 말이오. 결국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나오데 하하. 우선 두 가지를 백악관에 전하라고 했어요. 브라운과 협의를 하는 게 아니고 내 뜻을 백악관에 알려 존슨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오라는 식이지요. 그 두 가지가 엄청난 겁니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