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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WBC 결승진출, 20세기 한국야구 '톱 5' 쾌거

Los Angeles

2009.03.2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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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는 해방 이후 18년 만인 1963년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눌렀다. 결승에서 4번타자 김응용의 120m짜리 중월 2점홈런 포함 3타점 원맨쇼에 3-0 완승을 거두며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한국야구는 일본을 넘자 세계로 눈을 돌렸다. 한국이 처음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은 1977년 니콰라과 수퍼월드컵 대회. 한국은 결승리그에서 니콰라과.콜롬비아.푸에르토리코.일본을 누르고 4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 세계 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나온 김재박의 개구리번트에 이은 한대화의 역전 3점홈런은 지금도 야구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다.
90년대 한국야구는 국제대회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렸으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깨졌다. 박찬호.서재응으로 구성된 '드림팀'은 6연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한국은 일본을 넘어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3.4위전 8회 나온 이승엽의 2타점 2루타에 힘입어 일본을 3-1로 물리쳤다.
일본만 만나면 한국은 더욱 강해졌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은 일본을 연파하고 4강에 올랐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대진 탓에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에 패하며 4강에 만족해야 했다.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무적의 팀이었다. 9전 전승 우승 신화를 쓰며 한국스포츠 남자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의 기쁨을 전국민에 전했다.

2회 WBC 대표팀은 세계 야구지도를 바꿨다. 1회 대회 우승팀 일본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결승까지 오르자 한국야구를 보는 세계의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한국은 2회 WBC 대표팀에 빅리거라고는 추신수(클리블랜드)단 한 명 뿐이다.
일본 프로야구로 시선을 넓혀도 임창용(야쿠르트)만이 '해외파'다. 그럼에도 한국은 메이저리거들이 즐비한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중미의 강국들까지 연파했다. 지난 21일 준결승전에서 한국에 2-10으로 대패한 베네수엘라의 루이스 소호 감독은 "왜 한국에는 메이저리거가 많지 않은가"라며 의아해 한 것에서 '팀 코리아'의 높아진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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