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5] '1개 사단 파병에 최소 20억불 내라'
'봉급과 전투수당은 미군과 같아야'
이동원장관, 브라운대사 전령 취급
이런 상황에서 이동원 장관은 전장에서 소요되는 한국군의 물자는 한국산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한국군의 현대화 안건 등을 놓고 브라운 대사를 이른바 '전령'으로 내세운 외교적 줄다리기를 팽팽히 하고 있었다. 미 대사 브라운은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대사를 전령처럼 여겼다는 것은 이 장관의 뜻을 백악관에 전하라는 것이겠지만 대사는 우편배달부가 아닌 것이다. 자신도 워싱턴으로부터 훈령을 받은 것이 있을 텐데 이 장관이 미 대통령의 대답을 가지고 와야 파병을 결정하겠다고 하니 우거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협상은 해야 했고 이 장관의 요구는 컸다. 이 장관이 타계하기 전 필자에게 회고했던 브라운 대사와 주고받은 내용은 경제외교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 자체가 미공개 문서와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록을 재구성했다.
"한국군을 월남에 파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방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데 대사도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것 아니오."(이동원)
"대사로서 한국의 군사적 위험을 늘 신경 쓰며 주시하고 있습니다."(브라운)
"그렇게 이해한다면 파월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겠어요. 그러면 군대를 어디서 빼겠소. 전장에 투입하자면 특별히 훈련된 최상의 장병들을 빼야 하고 그래야 많은 전과를 올리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 아니겠소. 그러자면 최전방에서 2개 사단은 빼야 하지 않겠소?"
"아! 대통령 각하께서도 빼기로 결정을 보셨습니까?"
"빼지 않고 어디서 장병들을 선발한단 말이오. 장병을 새로 만들어서 보내나? 대통령 각하께서도 휴전선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이 철수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파병 문제를 검토하라고 하명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데 2개 사단을 뺀다고 했을 때 그 빈틈은 뭘로 막지요? 빼면 그만큼 한반도 방위선이 허약해지지 않겠소. 우리한테는 월맹보다 더 무섭고 지독한 북한 괴뢰 집단이 있으니 말이오.
월남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이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다시 말하면 허약해지는 방위선을 보강해야만 우리가 군대를 보낼 수 있겠다는 얘기요."
"1개 사단에 2억 달러 정도의 방위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2억 달러? 내 생각은 한국군 현대화요. 유능하고 용맹한 장병들을 빼게 되면 담장의 벽돌 빼듯이 빼는 것도 아니고 한국군 전체가 균형을 잃을 텐데 한국군을 현대화해 놔야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런데 2억 달러? 내 생각은 1개 사단에 최소 20억 달러의 방위비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 국방장관하고 협의해 봐야겠지만 아마 김성은 장관도 나하고 생각이 엇비슷할 거요."
뒤로 나자빠질 듯이 브라운 대사는 머리를 내젓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계속 요구사항을 짚어나갔고 나중에는 브라운 대사가 언성을 높이면서 '너희(한국군)들이 언제부터 콧대가 그렇게 높아졌느냐'며 판을 깰 듯이 나오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이 장관은 능청 떨 듯이 헛기침까지 하며 근엄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군 현대화 문제는 1개 사단에 최소 2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걸 명심해 주시고 그 다음은 파병에 따른 대우 문제인데 우리 장병들을 파병하면 봉급과 전투수당은 당연히 미국 정부가 미군 병사와 똑같은 기준으로 줘야 해요. 전사하면 생명의 대가도 미국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기준과 동일하게 미국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장관님은 봉급부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한국 군인을 파병하는 것이지 한국에서 미군을 파병하는 겁니까? 한국 장병들은 한국에서 주는 수준의 봉급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대사께서는 왜 그리 답답한 말씀을 하시오. 우리가 월남에 간 이상은 미국 깃발 밑에서 싸우지 않소.
그러면 똑같이 받아야지 같은 전장에서 같은 깃발에 같은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면서 미군은 더 받고 한국군은 덜 받아요? 그렇게 되면 인종문제도 제기될 수 있지만 뭣보다 미국이 우습게 되는 거 아니오. 미국이 뭣 때문에 월남에서 싸우는 거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 아니오. 민주주의라는 게 뭐요. 평등이잖소. 그렇다면 같은 깃발 밑에서 싸우는 사람들끼리도 평등하게 안 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어떻게 명분을 세우겠소.
남들이 웃어요. 그러니 봉급도 같고 수당도 같고 막사도 같고 의복도 같고 먹는 것도 칼로리가 같아야 해요. 미군은 하루 20달러어치 먹고 한국군은 5달러어치 먹으라고 한다면 말이 되는 소리요?"
"요리가 다르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은 김치를 먹는데 어떻게 미군들하고 똑같은 칼로리를 요구합니까!"
"그건 한국에서 먹을 때 얘기고 월남에 간 이상은 다르지요."
이 장관은 회고하면서도 막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대답을 듣자는 것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 아니었던 만큼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요구더라도 백악관에 전달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장관의 같은 깃발 아래서 같은 지휘관의 지휘를 받으며 싸운다는 말은 협상을 위한 전략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채명신 전 사령관은 인터뷰에서 증언이 확연하게 달랐다. 지휘 문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국군의 요구 사안이었다고 했다.〈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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