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은 이스라엘 출신 아리 폴만 감독의 연출작으로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영화다. 이 영화는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이기도 하다.
아리 폴만 감독이 악몽에 시달리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샤틸라의 학살사건 (1982년 9월16일)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 병사들을 비롯, 관련자 9명을 인터뷰하며 기억의 공백 지대를 메워나가는 여정을 영화에 담는다.
증인의 증언이 시작되면 그 내용을 비주얼로 보여주는데, 애니메이션이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특히 증인의 무의식이나 상상 가운데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시각화하기 어려웠을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실제로는 일단 실사로 영화를 완성해 놓고, 그를 바탕으로 해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비디오 필름 위에 그림을 덧칠해 제작하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은 중동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1982년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은 PLO 게릴라 세력 소탕을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점령하고, 친 이스라엘인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당의 지도자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 대통령으로 앉히려 했다. 영화 제목 중의 ‘바시르’가 그의 이름이다. 그런데 바시르가 대통령 취임 9일을 앞두고 이슬람 세력에 의해 암살 당한다. 이에 분노한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PLO 게릴라를 잡는다는 미명 하에 군인들은 이미 떠나고 없는 난민촌에 들어가 3천에 이르는 양민을 학살한다. 이때 이스라엘군은 난민촌의 외곽 경비를 맡고, 민병대의 작전을 돕기 위해 조명탄으로 밤하늘을 밝혀 준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역사를 참고로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무렵 레바논에서는 반 이스라엘 세력인 ‘헤즈볼라’가 결성된다. 헤즈볼라는 자살 폭탄 테러의 원조로 1983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막사에 돌진, 241명의 미 해병을 희생시키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게 폭파 기술을 전수한다. 잇단 하마스의 폭탄 테러의 근원을 되짚어 가면 이렇게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에까지 닿는다 할 수 있다.
사건 이후 샤론 국방장관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에서 물러나지만, 19년 후에엔 이스라엘의 총리로 다시 권좌에 오른다.
영화 끝 부분은 실사로 돼 있어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팔레스타인 여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를 비교적 느슨하게 감상하던 관객은 영화가 끝날 즈음 실사 장면으로 전환될 때 현실감을 여실히 느끼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영화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 측에선 자신들의 불명예를 다시 한 번 끄집어냈다고 해서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측에선 레바논 민병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아리 폴만 감독은 이 영화가 일 개 사병으로 현장 외곽에 주둔했던 한 개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을 뿐이라며 학살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팔레스타인 측에게 동정심을 표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