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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튤립의 계절

Los Angeles

2020.04.1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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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좋으면 예쁜 튤립 꽃을 피울 것이고 아니면 꽃이 안 핀다”
상춘객이 넘치는 ‘2019 태안 튤립 축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충남 태안반도에 약 200만 송이의 튤립을 심어 봄의 향연을 갖고 있었다. 불과 9년 전에 생겼지만 ‘세계 5대 튤립 축제’중에 하나로 꼽힐 만큼 볼거리가 많은 꽃 축제였다. 수많은 튤립 꽃으로 모나리자 그림을 만들고 수상 정원과 풍차 전망대도 볼 수 있었다. 4월 중순에 시작하는 이 축제가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혹시 개장을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

튤립은 동양 미인같이 동그스름한 얼굴을 가졌다. 꽃 색깔 중에 강렬한 빨간색도 있지만 은은한 연분홍색도 있다. 햇살에 화사하게 웃는 노란색 튤립도 있고, 신비스럽고 수줍은 보라색 튤립도 있다. 가만히 튤립 한 송이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청순함과 화려함 그리고 싱그러움이 가슴을 파도치게 한다.

튤립 축제는 내게 특별한 추억이 있는 행사다. 몇 년 전에 몬트리올에서 살 때, 해마다 5월이 오면 ‘오타와 튤립 축제’를 찾아갔다. 이곳에서의 축제는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 도시 전체의 튤립 축제다. 도시 내의 분산된 6개의 커다란 공원과 여러 개의 소공원에 대략 100만 송이의 튤립이 심겨져 있다. 긴 겨울을 지내고 나서 집집마다 앞뜰에 튤립을 심어 보행자가 보고 다니니 도시 전체가 튤립 동산이 된다.

70여 년간의 튤립축제를 하고 있는데 해마다 약 65만 명이 전 세계에서부터 찾아온다고 한다. 오타와 청사는 마치 런던의 국회의사당 석탑 건물을 닮았다. 그 주위에 색색이 만발한 튤립은 배경과 조화를 이루어 돋보인다. 이곳에 튤립 축제는 주변 자연 환경과 튤립 꽃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공원 연못 중앙에 청둥오리가 떠가고 그 주위에 튤립이 숲을 이루는 광경은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는 절경들이다.

오타와에 무슨 연유로 튤립이 이렇게 많을까 궁금했는데 안내 게시판에 튤립 이민사가 쓰여 있었다. 이민의 나라인 캐나다에는 튤립의 이민도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나치가 네덜란드를 침략하려했다. 네덜란드 왕실이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로 피신와서 3년간 도피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피신했던 왕실이 네덜란드로 귀국을 했다. 전쟁 중 네덜란드에서는 국민들이 식량이 부족하여 튤립 뿌리를 먹었다. 이런 국가 재정으로 캐나다 정부에 감사할 것이라고는 튤립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덜란드 왕실에서는 캐나다 정부에 감사의 뜻으로 10만개의 튤립 뿌리를 보냈다. 이런 엄청난 물량의 튤립을 선물로 받고 캐나다 정부도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한 배 가득 실은 네덜란드산 튤립 뿌리들이 먼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이다. 긴 항해 중 썩은 것도 나왔을 것이고 오타와의 겨울이 몹시 추워서 얼어 죽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땅의 성분이 달라 시들어 죽은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70여년이 지나면서 오래된 튤립들은 죽고 새 뿌리가 나왔다. 수십 대를 거친 튤립 후손들이 캐나다의 날씨와 토양에 적응해 오늘날 오타와 튤립축제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상공회의소의 한 사진작가가 튤립사진을 즐겨 찍다가 1953년에 건의해서 튤립축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귀국한 후에 홈디포에 가니 네덜란드산 튤립 뿌리 40개를 한 포대씩 넣어 특가로 팔고 있었다. 네덜란드산이라 너무도 반가와 얼른 사왔다. 그리고 집 뒤뜰에 정성껏 심었다. 그리고 화분 한 개에 4개의 튤립 뿌리를 심어 누님께 드리면서 말했다. 누님의 믿음이 좋으면 예쁜 튤립 꽃을 피울 것이고 아니면 꽃이 안 필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누님이 카카오 톡에 분홍색 튤립 꽃 인증사진을 보내왔다. 예쁜 누님이 역시 믿음이 좋은가 보다. 올해도 싱그럽게 피어오르는 튤립의 계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속히 소멸되고 모두가 정상 생활을 하게 되길 기원해본다.


윤덕환 / 수필가·문학세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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