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선 ‘먹방’, ‘쿡방’이라고 불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다. 미국의 CNN 방송에서 우리나라의 먹방 열풍을 특이한 문화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나도 가끔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데 요리를 못하는 나는 먹방보다는 쿡방을 챙겨본다. 평소 즐겨 보는 방송을 찾으려고 채널을 돌리다 ‘바다 건너 사랑’이라는 새로운 제목이 눈에 띄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보게 됐다.
제목만 보고는 바다가 가로 막혀 이루어질 수 없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가 생각했지만 실제론 전혀 예상 밖이었다. 연예인들이 월드비전과 같은 글로벌 구호단체와 연대해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를 찾아가 일주일간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곳서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현실을 과장 없이 소개하며 시청자들에게 후원을 호소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 티타늄 등 엄청난 천연자원의 보고다. 부족할 것 없는 아프리카지만 오랜 내전으로 대륙의 대부분 나라가 가난하다. 그곳 국민 대다수의 삶은 하루하루 지나기가 절박할 정도로 처절해서 해외 구호에 목숨을 의탁하고 있다. 그곳에선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 어린이들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며칠씩 굶기를 밥 먹듯 한다.
당장 오늘 한끼를 걱정하는 아이들은 밥이 없으면 깨끗지도 않은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설움이 있지만 배고픈 설움보다 더한 서러움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배고픈 설움이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만큼 크나큰 고통일 것이리라.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받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연예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마주한 아동들은 대부분이 3살에서 12살이다. 부모가 병으로 일찍 죽거나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덩그러니 황망한 현실에 남겨진다. 그때부터 맏이는 꿈도 희망도 접고 동생들을 책임지고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가장이 된다. 세상 헤쳐 나갈 힘이 없는 어린아이가 삶의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할 나이에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고된 육체 노동을 한다. 그렇게 하루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겨우 가족이 한끼 먹을 양식을 구할 수 있다. 그나마 일거리가 없을 땐 며칠씩 굶는다. 그렇게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에 학교에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 프로에 나오는 장면 장면이 다 가슴 아프지만 특히 배움에 굶주린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발돋움을 하고 부러운 눈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내 기억 저 편에 있던 여학교 때 읽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여주인공 채영신은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농촌 계몽운동을 한다. 좁은 교회 건물을 빌려 야학을 하는데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좁아 학생을 80명만 받고 나머지는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이다. 현실에선 교실 밖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몽둥이로 쫓겨난다.
배고픈 아프리카 아이들을 주제로 한 프로를 보며 그곳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깨가 결릴 정도로 힘들었다. 평소 내가 부리던 식탐에 죄의식마저 느꼈다. 살이 찐다고 다이어트를 하네 마네 하는 것이 너무 사치스럽고 부끄러웠다. 내가 사는 미국은 먹을 것이 넘쳐 나서 아이들이 고지방, 고칼로리로 소아 성인병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 무슨 공평치 못한 세상이란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 두 아이들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화면 밑에 적힌 후원 번호로 전화를 걸까 말까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갈등하지만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상에는 그런 애들이 수없이 많은데 한 두 명 도와준다고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애매한 핑계를 내세우면서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 놓았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다. ‘가장 고급스러운 자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 그가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니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과 같은 기적이 그 땅에서도 일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대한민국은 배고픈 기억을 잊은 채 바야흐로 식탐에 빠졌다. SNS에서 떠도는 자기 과시 먹방 문화가 이제 예능을 넘어 방송 전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있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 터지게 많이 먹기, 허겁지겁 빨리 먹기 등 놀이 위주로 하는 방송은 거부감이 느껴진다. 특히 굶주리는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밥을 신성시해왔다. 우리가 자랄 땐 밥을 남기면 ‘복이 나간다’고 부모님께 야단을 맞으며 자랐다. 김지하 시인은 ‘밥’이라는 시 첫 구절에서 ‘밥이 하늘입니다’라고 했다. 밥이 하늘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무슬림들도 음식은 신성한 것이며, 먹는다는 것은 기도와 동급으로 종교적 행위로까지 생각한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불결한 물을 마시고, 아무 풀이나 뜯어먹는 바다 건너 이야기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종교적 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을 재미나 놀이의 대상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