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로는 개도 안 때린다’는 속담이 있다. 빗자루로 사람을 때리는 것을 말리면서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어떻게 나왔을까. 어린 시절 놀다가 방을 어질러 놓으면 엄마 한테 빗자루로 한 두대씩은 얻어 맞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빗의 종류도 몽당비, 풀잎비, 짚풀비, 수수비 등 많다. 마당에서 사용하는 것, 부엌에서 사용하는 것, 방에서 사용하는 것 등 용도에 따라 다르다. 나는 시골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을 때 싸리비로 마당을 쓸어본 경험이 있다. 지금은 세상이 현대화돼 무게가 가벼운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오고 전통 빗자루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당을 쓸고 나면 마음이 깨끗하고 상쾌해진다. “할아버지, 내가 다 쓸었어요. 깨끗하지요”하며 응석을 부린 적도 있었다. 수십년 전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한국에서는 정풍송 원로 작곡가가 ‘빗자루’라는 풍자가요를 만들어 인치엘로라는 그룹이 노래하고 있다고 한다. 빗자루의 추억이 되살아 나는 듯하다. 빗자루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청결함이다. 쓰레기를 쓸어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풍진 세상을 만나 부귀영화를 누렸던 너는 네가 할 일이 없단 말인가”라며 나를 꾸짖기라도 하는 듯하다. 거짓과 부정의 말로 둘러대는 궤변가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왜 침묵하느냐 라며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 할까. 양심이 없는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 살다 보면 쓰레기가 나오는 법이다. 어디 완전한 사람이 있나. 실수를 했을 때 빨리 시정을 하고 바른 길을 찾아 가야 한다. 시행착오 보다는 시행착오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이 더 문제다.
정치, 종교, 교육 각 분야의 표리부동한 위선자들과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파렴치한 정치가들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 모두 꿈꾸던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대한민국의 후손들에게 거짓과 부정이 사라진 자랑스러운 미래를 물려 주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노래 ‘빗자루’의 외침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외침이다. 타락한 지식인들과 권력에 비굴한 노예들에게, 양심과 정의가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개도 안 때리는 빗자루로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이런 시기에 이런 가요를 발표한 정풍성 작곡가의 용기와 정의감은 존경스럽기만 하다.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 난세일수록 용기 있는 영웅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판단 기준이 다르다 해도 상식이란 것이 있는데 고집과 편견으로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사람들은 사라져야 한다. 어서 속히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