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커네티컷 주 아름다운 두 시골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레이크빌 마을이 있다. 교차길을 둘러싼 아름다운 경치, 65에이커의 넓은 땅 위에 단 몇 집이 있는 텅 빈 공간이 있었다. 이곳에 마리아 하치키스 교사가 ‘더 하치키스 스쿨’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 학교가 오늘날 545에이커의 넓은 교정과 반듯한 학교 건물들, 운동장과 커네티컷 주에서 가장 깊은 호수를 끼고 버크셔 산을 배경으로 한 보딩스쿨 ‘더 하치키스 스쿨’로 변모한 것.
500여명의 학생만을 수용하여 가르치고 있다. 이곳은 미국 200개 자연 보호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마리아 하치키스는 당시 예일대학교 총장이었던 티모시 드와이트의 요청에 따라 예일대 입학생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1891년 이 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내 가장 입지가 강한 기숙 사립 고등학교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 현재 200개가 넘는 학과목을 16개의 학과 부서가 함께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1891년 처음 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50명의 학생들이 모여 공부했다. 당시 학비는 1인당 600달러였다. 그러나 하치키스는 학교 재정 가운데 많은 부문을 우수학생 양성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에 할애했다.
그 결과 11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수한 학생들에게 420만달러가 넘는 학자금 보조를 전교생의 35%나 되는 학생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장학금은 최소 2000달러에서 전액 장학금까지 지급된다. 장학금 평균이 학비의 75%에 달한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중에는 불구의 몸이 돼 수입이 하나도 없는 가정에서부터 연봉이 150만달러 이상되는 고소득자까지 다양하다.
1971년 더 하치키스 스쿨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윌리엄 올슨 교장은 “우리는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고집하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교육 시스템은 발전을 거듭해야 함을 강조했다.
올슨 교장의 이같은 발표가 있은 후 3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1974년 88명의 아리따운 여학생들을 처음으로 입학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이 교장의 인기가 치솟지 않았나 한다. 다른 많은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거의 여학생이 전체의 반이나 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여는 국제간 교육 교환 프로그램 또한 더 하치키스 스쿨의 큰 자랑거리다. 이미 1912년 ‘차이나 커넥션’을 열어 중국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많은 중국파견 미 대사들을 배출해냈다.
클락 샌디 랜드 주니어 대사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해외로 학생을 보내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이 학교의 자랑거리. 이미 1928년도부터 영어로 교육이 가능한 국가들과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1948년 졸업생들이 기금을 모아 여름 방학동안 외국에 나가 봉사활동 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따로 지원하는 코너도 있다.
현재 18개국에서 65명 정도의 해외 유학생들이 하치키스 스쿨에 재학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학생이 15명에 달한다. 이번 가을 추가로 몇 명의 한국학생들이 더 입학할 예정.
이 학교에는 18명의 입학 카운슬러가 상주해 있다. 매년 5000명 이상 이 학교에 1차 지원서를 인터넷으로 보내며 이 가운데 1500명의 학생들이 2차 심사를 거쳐 20%에 달하는 300명이 입학한다. 입학생 수를 보면 9학년 100명, 10학년에 50명, 11학년 20명 12학년 18명 정도다.
9, 10학년 남,녀 학생의 비율은 같지만 11, 12학년은 여학생 수가 적어진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특성과 독립정신, 시민정신을 비중있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