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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Los Angeles

2009.04.1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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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화 / UC리버사이드 교수
내가 가르치는 한국어 고급반에서는 기회가 되는대로 유용한 한국어 속담을 소개하고 있다.

일상성에 깊이 뿌리를 내린 표현이라는 이유도 있고 속담의 이해 또한 한국 문화의 이해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속담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 속담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과 지혜가 담겨 있다.

그런데 속담은 간결한 표현들이지만 비유로 함축돼 있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에서 처음 배우는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 유사한 영어의 관용적 표현이나 적절한 상황 등을 파워 포인트나 유튜브를 동원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 중에 '누워서 떡먹기 (A piece of cake)' '세월이 약이다(Time is the great healer)' 등과 같이 어려운 속담도 적절한 영어 표현만 알면 쉽게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속담들은 일일히 예를 들거나 상황을 제시하며 효과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로 끝나고 만다

그런데 며칠 전 강의실에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표현을 무색하게 하는 행사가 있었다. 'TALK(Teach and Learn in Korea)'라는 프로그램의 홍보를 위해 LA 총영사관에서 교육 영사를 비롯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내용인즉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영어교육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한국 정부 장학생 선발을 위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영어권 국가의 대학생들을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해 한국의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영어를 가르치는 취지로 작년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올해 두 번째로 선발하는데 대상은 대학에서 2년이상 재학한 학생들로 인종에 관계없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학교를 쉬어야 하고 월급도 많지 않은 것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요즘처럼 불경기에 사정상 학교를 쉬어야 하거나 대학 생활에 활력소나 동기부여가 필요한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을 잘 알지 못하고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타인종 학생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에 다녀 온 것이 귀한 경험이었다고 한다면 우리 한인 자녀들에게는 남다른 체험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칫 '우물 안 개구리'로 살기 쉬운 미국 생활에서 벗어나 호혜적 차원에서 한국 농어촌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뜻 깊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조상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물론 농어촌 주민의 따스한 사랑과 인정을 흠뻑 받는 값진 체험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홍보가 끝나고 방문객들이 간 후 학생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발견했다. 앞서 몇 주전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했지만 혹 학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놓고 고민하던 학생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이 경우에 해당하냐고 물었다. 다행히 모두들 머리를 저었다. 우리 학생들이 이 속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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