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조드 아브두라이모브(18.우즈베키스탄)는 고향 타슈켄트 밖에서는 별다른 경력을 쌓지 못한 이름없는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의 대표적 공연장인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나서 하룻밤새 경력이 바뀌었다. 먼 나라에서 온 패기만만한 청년의 강렬하고 정확한 연주에 런던 청중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제7회 런던 국제 콩쿠르' 결선 무대. 제임스 저드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했다. 한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경력이 되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확보한 것도 이 콩쿠르의 매력이다.
총 100여명이 참가해 2주 동안 겨룬 '제 7회 런던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무대였다. 아브두라이모브는 이날 당당히 1위(상금 약 2800만원)로 선정됐다. 이번 대회 참가자 중 가장 어렸고 역대 우승자 중에서도 최연소였다.
콩쿠르 운영위원장인 술라미타 아로노프스키(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어린 피아니스트가 단숨에 세계 중심부에서 주목받는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콩쿠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대회 수상자들은 입상 이후 세계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기획사와 계약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말 한국을 찾아 스타성을 선보인 시몬 트릅체스키(30.마케도니아) 또한 이 대회 출신이다.
런던 콩쿠르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흔히 꼽히는 차이콥스키.쇼팽.퀸엘리자베스와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개최국 출신이 유리하다' '기교만 중시한다'는 등의 기존 콩쿠르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선 심사위원과 참가자 사이에 엄격한 규정을 둔다. 이번 대회에 나오려했던 한 한국인 피아니스트는 심사위원 중 한 명에게 3년 전 배웠다는 이유로 참가를 할 수 없었다. 아로노프스키 운영위원장은 "참가 신청자에게 일일이 전화해 사사 관계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1차와 2차 예선에서 연주하는 참가자 수가 똑같다는 것도 이 콩쿠르 만의 특징이다. 1차와 2차 모두 기회를 준다는 것은 탈락이 없다는 뜻이다. 심사위원 9명 중 한 명인 티모시 워커(런던 필하모닉 예술감독)는 "경쟁을 위한 경쟁을 피하고 한창 피어나는 젊은이들의 가능성을 보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입상 이후 '관리' 시스템도 철저하다. 아로노프스키 운영위원장은 "입상자에게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묻는 것이 주최측 업무의 하나일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번 대회에 심사를 맡았던 김미경(48.독일 하노버 음대) 교수는 "콩쿠르에 참여하려는 연주자나 관객 모두가 이 무대를 만만치 않게 바라보고 존경하도록 만드는 공정성과 철저한 관리 시스템은 한국 콩쿠르들도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맡은 김미경 하노버 음대 교수 '한국 연주자들 듣는 귀 더 키워야'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런던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김미경(사진) 독일 하노버 음대 교수는 한국에서 한때 ‘잘 나가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출강하며 한 주에 100여 명 학생을 가르치는 생활을 2005년까지 했다. 대학입시와 각종 국내 콩쿠르에서 제자들이 좋은 성적을 내 보람있었지만 틀에 갇히는 느낌이 든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시야를 넓히고 싶었어요.” 그는 2001년 ‘리스트 국제 콩쿠르’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 콩쿠르에 직접 이력서를 내가며 심사위원직을 맡았다. 이후, 8년동안 20여개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하며 경력을 쌓았다. 2007년부터는 아예 한국을 떠나 독일 하노버 음대에 터전을 잡고 활동중이다. “한국 학생들 음악이 이제야 분명히 들린다”는 그는 “우리 젊은 연주자들이 국제적으로 듣는 귀를 가져야 할 때”라고 충고한다. 또렷한 소리, 빠르고 힘있는 음악을 높이 치는 한국이 음악 전체의 이해를 중시하는 국제적 시각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런던 콩쿠르의 한국 참가자 10여명 중 입상자가 없었던 것을 두고 그는 “레퍼토리 폭을 넓히고 다른 사람 음악도 많이 듣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런던=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