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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2] '계약 할테니 300만달러 위약금 걸어라'

65년 한국정부의 가용외화 겨우 4700만 달러
일요일 한국은행 긴급이사회 열고 한진 보증

물론 한진에 관한 자료는 예상 외로 미국 펜타곤 서류함에 가득 보관되어 있더라고 했다.

한국에서 미 군수물자들을 수송할 때 무엇을 했고 어떻게 얼마에 했다는 것까지 전부 파일로 보관해 뒀더라는 것이다. 미국이 신뢰하고 있었던 셈이다.

"당신이 원하면 수송하는 일감을 주겠다 계약을 해주겠다. 다만 주는데 조건이 있다. 월남에 장비를 가져오너라. 그걸 약속하는 의미로 300만 달러를 걸고 계약을 하자. 이게 핵심입니다.

첫 방문에서 아주 쉽게 약속을 받고 곧바로 계약을 했지요. 300만 달러는 위약금으로 걸어놓는 돈이지만 조건의 핵심이 장비이기 때문에 좋은 장비를 그만큼 가져오라는 얘기고 그렇게 하면 물량을 주겠다는 얘기예요.

그 당시 300만 달러면 대단한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수송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나갈 노동력을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모두가 근면했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300만 달러로 시장을 열 수 있다면 큰돈도 아니고 분명히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지요. 더구나 버리는 돈도 아니고 장비 구입인데.

일단 귀국해서 펜타곤에서 있었던 일을 정부에 보고했어요. 이런 일이 있으니까 우선 정부에서 월남 정부의 양해를 좀 구해주시오. 그게 우리 땅이 아니잖아요. 점령지도 아니고. 그러니 우리 근로자들과 장비가 들어간다고 월남 정부의 양해를 구해야 될 거 아니겠어요. 뭐 그렇게 해서 시작을 한 겁니다."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시니까 쉽게 된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국내에서 특혜 문제는 왜 나온 겁니까?

"껄껄. 정부 보증 때문이지요. 그땐 특혜가 될 수도 없는데 정부가 한진 문제로 긴급회의도 하고 그러니까 업계에서 누가 특혜 얘기를 좀 했어요. 하여간 300만 달러가 적습니까? 우린 그런 돈이 없었어요. 그걸 정부가 보증해 달라는 거지요. 솔직히 정부가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한진이 주저앉게 되는 그런 계약을 했어요. 배짱도 컸지 껄껄껄.

그 얘기를 하자면 장기영씨 그분이 그때 부총리 아닙니까.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선 장기영 부총리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겁니다.

하여간 그분에게 보증 얘기를 했더니 너무 놀랐는지 처음엔 눈만 껌벅거리고 말이 없어요 껄껄껄. 그러더니 딱 한마디야. 각하밖에 못해요 이러잖아요."

-어떤 내용으로 계약을 했는데 정부 보증이 필요했습니까?

"일감을 주는데 장비를 가져오라는 조건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일은 1966년 5월 15일 이후부터 하기로 하고 300만 달러를 걸고 쌍방계약을 하자 장비를 못 가져 와서 일을 못하면 한진이 300만 달러를 위약금으로 물고 만약에 미국 측에서 작전상 필요 없어서 계약을 취소하면 300만 달러를 한진이 받기로 그런 계약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보따리 장사는 안 되고 제대로 된 장비를 가지고 들어와라 그거거든? 그러니 일감은 확실하게 확보를 해주는 반면 우리도 확실한 장비를 가지고 들어가서 전쟁물자를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신속히 수송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쌍방계약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꼼짝 못하는 거지요 서로가. 그런데 돈이 있나. 장비를 구입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사실은 그 계약서를 가지고 귀국길에 홍콩에 있는 미국 은행부터 찾아갔어요. 융자를 받으려고. 거기서 계약서를 쭉 보더니 좋은 계약이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네들이 300만 달러 융자를 해줄 용의가 있는데 단 한국 정부의 개런티를 받아와라 담보도 없이 돈을 그냥 줄 수는 없으니 정부 보증서를 가져오라 이거지요. 말은 맞지.

그렇지만 우리 정부가 그 당시에 상당히 어려웠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장기영씨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계약은 해왔지만 계약서에 사인한 것밖에 더 있어요? 그땐 솔직히 전쟁터에서 어떻게 될지 내일을 모르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습니까.

"말씀을 드렸지요. 그때 자유중국(대만)을 방문하셨던가? 그랬는데 만나 뵙고 여차여차해서 수송시장을 뚫었지만 정부 보증이 없으면 결국 계약도 파기되고 월남에 나가서 일도 못하게 된다고 부탁을 드렸어요. 1965년에 한일국교가 됐지요? 그때 정부의 가용외화가 얼마냐 하면 4700만 달러밖에 없었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쓸 수 있는 달러가 그 정도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그 숫자를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도 난감하시지.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가서 용감스럽게 해라.' 껄껄껄.

해주겠다는 말씀은 안 하시고 용감스럽게 하래요. 박 대통령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은 분입니다. 결국은 해주겠다는 말씀인데 부총리도 있고 정부 보증은 절차가 있으니까 신중하게 말씀하시는 거지요."

-장기영 부총리로서는 대통령의 언질이 있었으니까 동력이 붙었겠군요.

"장기영씨한테 얘길했더니 나하고 친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좋아서 신이 났어요. 그런데 대통령을 만나느라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계약한 날짜는 촉박하고 아주 급하게 됐어요.

언제 어느 날까지 장비를 넣기로 했는데 날짜를 못 지키면 계약상 7만 달러가 달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급하다고 했더니 나중에 재무장관을 했지만 황종률씨가 그때 재무차관인가 그랬는데 일요일에 한국은행에서 이사회를 열었어요.

일요일에 이사회 열었다는 얘기 들어봤어요? 처음 듣죠? 전무후무한 얘기일 거야 껄껄껄. 그것 때문에 내가 황종률씨한테 굉장히 싫은 얘기 들었다고. 중앙은행을 어떻게 보고 일요일에 긴급 이사회를 열게끔 했느냐고 말이지. 하여간 그렇게 한 덕분에 한국은행에서 개런티를 해준 걸로 융자 받고 장비 실어내 가면서 월남으로 나가게 된 거지요.

그때부터 5년 반 동안 우리 한진그룹이 정말 열심히 해서 엄청난 외화로 국가경제를 도운 겁니다. 껄껄껄."〈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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