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또 활용해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시간표를 일과 활동들로 가득 메우고 살아왔다.
스페인에서 국제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3시에 끝나자마자 집에 와서 저녁을 먹기 전후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영어의 ABC를 배우던 기억이 난다. 이런 습관 덕분에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땐 시간관리의 고수가 돼있었다.
남들이 볼땐 독한 모범생이었을까, 화장실을 갈 때에도 사회책을 들고가며 외우고 있지를 않나,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는 1분에 읽을 쪽 수를 정해놓고 생물책을 읽고 있지를 않나, 점심 시간에 남들은 전부 급식실에 가서 급식을 먹는데 줄 서 있는 시간과 배식 시간마저 아끼겠다며 어머니께 부탁을해 도시락을 싸들고 혼자 공부를 하며 교실에서 점심 시간을 보냈던 나이다. 그렇다고 내가 밥먹고 공부만했을까.
중학교 때의 연장으로 고등학생 때에는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시간 외의 시간을 토론대회 준비며 바이올린 연주며 봉사며 생물연구로 빈틈 없이 채워나갔다.
쉴 새 없이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던 나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미국에 와있었다. 하지만 그 전 모습 그대로 나이와 장소만 바뀌여서 나는 또 다시 달리고 있었다.
여전히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나영이였고 빽빽한 계획표에 또 다른 활동을 더 추가할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은 없는지 살피는, 어느덧 바쁜 생활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영이였다.
그러던 1학년 학기초 어느날, 바쁜 생활이 습관이었지 그런 생활을 정작 즐기지는 못하고 있던 나에게 사춘기때 찾아왔던 질문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나는 왜 살까?”
하나님을 위해 공부며 내 생활의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가 다시금 그 질문을 접하자 구체적인 답이 입에서 쉽게 안나오는 것이였다. 바쁜 생활이 무의미해지면서 어깨힘이 쭉 빠졌다. 얼마있지 않아 그렇게 몇일 공부 의욕 상실의 늪에 빠져 있던 나를 구해준 친구가 있었다.
“나 요즘 평소처럼 바쁘게 살 의욕이 안생겨. 왜 이럴까? 휴.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사니?”
“하고싶은 게 있으니까.”
뜬금 없는 나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을만한 친구가 거리낌 없이 뱉은 말에 나는 오히려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눈 앞에 보이는 일들로 채우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데에 초점을 두었지, 내가 선택한 활동이 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진정한 시간 관리의 달인이라면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아껴쓰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가슴을 뛰게하는 일과 활동들로 하루를 최대한 채울 것이다. 유펜에 와서 흘러간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며 알뜰한 시간관리를 넘어선 효과적이고 보람된 시간관리는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았다.
진정 하고싶은 것에 마음을 두고 시간을 투자하자.
유펜의 간호학과 학생으로 들어와서 의대준비를 하고 있는 나는 학부생이라는 신분으로 유펜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실에 들어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실적이 의대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될 즘, 20여명의 교수님들에게 나의 이력서와 연구를 하고 싶은 이유를 써내린 에세이를 이메일로 보내고 답변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한 교수님이 당장 내 연구실에서 일을 해달라며 내게 손을 뻗어주셨다.
연구에 앞서가는 유펜에서는 부수적인 연구직을 얻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름 방학이 2주 밖에 안남은 시점에서 여름부터 시작 가능하도록 나를 받아준 교수님이 너무나 고마웠던 나였다. 이 분은 하버드에서 최종 연구실적을 쌓으시면서 중국에도 연구실을 확보해 두시고 현재 유펜에서 연구를 활발히 하고 계신 유펜 의대의 중국 교수님이셨다.
이분의 연구 주제는 콜레라균의 ‘정족수 인식’으로 박테리아균의 수가 적을 때는 별 반응이 없다가 일정 무리를 이루게 되는 순간 인체를 공격하게 되는 반응이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