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요약: 뱀파이어의 원조 격인 ‘드라큘라’보다 25년이나 앞서 세상에 나온 최초의 뱀파이어 카밀라. 잔악하기보다는 탐미적이고 몽환적 분위기로 전개된다. 두 소녀의 운명적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배급사 필름 무브먼트의 웹사이트에서 버추얼 시네마(www.filmmovement.com/carmilla)로 관람 가능.
드라큘라 백작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뱀파이어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밀라. 영화 ‘카밀라’는, 서구의 문학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뱀파이어가 여성이었으며 또한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1872년 아일랜드에서 발표된 소설 ‘카밀라’는 고딕 분위기에 사실적인 묘사를 접목한 셰리던 르 파뉴의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소녀 카밀라는 뱀파이어의 원조 격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보다 25년이나 앞서 세상에 나왔다.
일설에는 ‘드라큘라’가 ‘카밀라’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두 소설 다 오스트리아의 스타리아를 배경으로 했고 주인공 모두 아름다운 외모, 귀족의 품위를 지니고 있다. 낮에는 관에서 잠을 자는 것도 유사하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드라큘라는 백작의 작위를 지닌 하나의 캐릭터이고 뱀파이어는 흡혈귀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뱀파이어를 한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어쩌면 수백 편에 이를지도 모른다. 르파뉴가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는 지금처럼 뱀파이어에 대한 대중의 이해나 전형화된 클리셰가 없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에밀리 해리스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카밀라’는 과거 그 어느 뱀파이어 영화들보다 탐미적인 시각으로 원작자의 상상력에 접근한다. 그녀의 표현 양식은 다분히 여성적이며 섬세하다. 소설에서는 암시적으로만 묘사되던 레즈비언 분위기는 영화에서보다 진화된 형식으로 재현된다.
아름다운 숲속저택에 아버지와 함께 사는 라라(해나 래, Hannah Rae)는 가정교사 폰테인(제시카 레인)에게 엄숙한 숙녀 교육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저택 부근에서 마차 사고가 일어나고 카밀라라는 이름의 소녀가 로라의 집에 맡겨진다.
라라는 카밀라(데브림링노)를 처음 보는 순간 어릴 적부터 환영에 나타났던 소녀가 카밀라였음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라라와 카밀라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리며 서로의 운명에 얽혀 있는 끈들을 이어간다.
그러나 카밀라의 등장과 함께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가정교사 폰테인이 두 소녀 사이에 감도는 기이한 기운을 알아차리고 떼어 놓으려 하지만 카밀라에게 이미 영혼이 사로잡힌 라라는 악몽에 시달리며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는 오래전 전쟁으로 멸족된 카렌스테인 가문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카밀라의 과거에 해당하는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대신 두 소녀의 사랑과 성적 환상에 집중한다. 뱀파이어 영화임에도 흡혈 장면들은 부분적이고 대신 코르셋을 착용하는 장면들로 시선을 끈다.
잔악한 뱀파이어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서로를 원하는 두 소녀의 몽환적 욕망과 기괴한 사건들이 음산하게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