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3] 박정희, 김용태에 '전황 파악' 밀명
달러 쏟아지자 '의리→실리'로 마음 바뀌어
베트콩 '김용태 월남온다' 현상금 내걸어
이와 함께 조중훈 회장의 회고대로 장기영 부총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작용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사실 조 회장은 트럭이나 굴리고 물자나 수송하는 운송업자로만 기록될 인물이 아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정부 문제를 해결하는 막후 인물로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훗날이지만 서울지하철 건설 때 정부는 애초 프랑스의 자문을 받아 모든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면서 준비했다.
그랬음에도 객차차량을 놓고 뒤늦게 뛰어든 일본과 프랑스가 첨예한 수주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당시 집권당의 재정위원장을 비롯한 정치권이 개입하고 집권 공화당에 정치자금이 유입됐다는 등의 석연치 않은 문제로 일본에 낙찰되자 프랑스는 한국이 반대하는 북한의 WHO(세계보건기구) 가입을 오히려 지원하고 한국과 외교 단절까지 언급하면서 분노했다.
그때도 김종필 총리의 특명을 받고 프랑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조 회장이 맡아서 해결했다. 그리고 장기영 부총리 시절인 60년대 무렵에도 조 회장은 정부를 위해 큰일을 해치운 것이다.
정권이 위태로울 정도로 극심한 식량파동을 겪고 있을 때인 64년 무렵. 박정희 정권은 이른바 '3분(밀가루.설탕.시멘트) 폭리' 사건으로 대통령 선거 때 밀가루 부대가 뿌려졌을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633만9000달러어치 소맥을 사들여 대선에서 밀가루 부대를 집집마다 뿌린 것은 신임 장기영 경제팀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정부의 위기였다.
민주당과 민정당 등 정치권이 궐기하고 요동을 치는 상황까지 갔고 미국까지 나서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추가원조 1500만 달러를 취소하겠다는 압력을 가해 왔다.
추가 원조가 끊긴다면 정부는 외교적인 고립까지 초래해 최대 위기를 맞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럴 때 장 부총리의 부탁을 받고 나선 인물이 조 회장이었다. 한일국교가 수립되기 전인데도 그는 일본으로 날아가 2000만 달러의 경제협력차관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껄껄껄. 그런 일이 좀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게 64년 일이잖아요. 사실 2000만 달러가 없었으면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도 어려웠고 정부가 곤경에 빠졌을 거예요. 그때 다나카 의원이 대장성 장관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장관이 나를 도와준 거지요.
일본 각의에서 차관을 통과시키느라고 애를 썼으니까. 그때 나도 쇼를 좀 했지 껄껄껄. 장 부총리가 특별히 부탁을 하니까 민간외교관 노릇을 좀 했던 건데 월남 진출하고는 관련이 없는 거니까 그런 얘기는 다음에 합시다 껄껄."
어쨌든 조 회장은 펜타곤 방문 이후 정부가 기대한 이상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기세였다. 실제로 민간 수송부대가 월남에 대거 투입됐을 때는 전쟁물자를 실어 나르는 장비도 중요했지만 민간인력 자체가 달러박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한진만 인력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현대건설의 경우는 준설공사 등으로 돈을 벌기도 했지만 세탁공장을 운영해 큰돈을 만졌다.
말이 공장이지 세탁소나 다름없는 기능이고 기술만 있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세탁기술자로 채용했다. 군인들만 보이는 뜨거운 전쟁터에서 군복 세탁은 큰 자본 들이지 않고 몸으로 버는 장사였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나트랑에 2개 퀴논에 3개 캄란에 2개소를 열어 68년부터 3년간 548만9000달러를 벌어들였다.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로 손해를 본 것에 비하면 오히려 세탁공장 운영이 중요한 수입원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인력수출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자금줄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월남전이 2차 5개년계획이 끝나는 71년이나 72년까지만 계속된다면 5개년계획 내용을 수정하거나 앞당길 수도 있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그래서 나왔던 것이다.
실제로 전황 파악을 위해 박 대통령은 김용태(전 장관) 국회 국방위원을 은밀히 월남으로 밀파하기도 했다. 작고했지만 김 의원이 생전에 필자에게 회고한 내용에는 박 대통령의 경제적 실리 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어른이 경제개발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 처음 파병할 때는 의리를 생각해 미국을 도와야 한다고 하더니 달러가 막 들어오니까 마음이 달라졌어요. 한창 전쟁 중인데 월남으로 들어가 인력활용을 살펴보고 오라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미국에 들러 미군이 언제까지 폭격할 건지 알아보래요.
오래 할수록 좋다 이거지 하하하. 그때 정부에 돈이 뭐 있어요? 월남에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사실상 개발자금입니다. 그런 형편이야. 워싱턴에 도착해 당신들이 언제까지 북폭(월맹)을 할 거냐 왜 그러느냐 그걸 알아야 우리가 파병을 더 확대할 건지 말 건지를 검토할 거 아니냐 이랬더니 미 국방부에서 다 알려줘 하하하. 그런 다음에 비둘기부대 영내에 내 숙소를 준비하도록 연락해 놓고 내일이면 월남으로 떠나는 날이야.
난데없이 데이비드 기자가 알아가지고 한국의 김용태 의원이 박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월남 간다고 전 세계에 타전해 버렸어요. 아이고…. 청와대에 연락하니까 그래도 들어가라잖아.
우리 인력을 더 투입할 시장이 없는지 구석구석 살펴보라 이거예요. 월남에 도착하니까 거리 벽에 내 얼굴 붙여놓고 베트콩들이 현상금을 걸어놨어. 보는 즉시 사살하면 현상금 준다고 말이지. 그런 난리를 치면서 월남 달러를 경제개발에 최대한 활용한 겁니다." 〈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