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다녀오는 길에 K선생댁 김장김치 세 포기를 얻어 왔다. 직접 농사 지은 배추와 무로 담근 김장김치라 그 깊은 맛과 향은 비교할 수 없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아껴 먹고 아껴 먹어도 금방 바닥이 났다. 우선 급한대로 파는 김치를 사봤다.
이 김치가 좋을까 저 김치가 나을까 브랜드마다 다 사서 먹어 보았으나 성에 차지 않았다. 김치에 지나치게 양념을 많이 한 것도 그렇고 배추를 잘 절이지 않았는지 줄거리쪽은 거의 생배추 수준이었다. 그렇게 잘 절여지지 않은 김치는 익혀도 이상하게 짓무르고 찌개를 끓여도 줄기 부분이 뻣뻣하면서 영 맛이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동안 해왔던대로 김치를 직접 담기로 했다. 유별난 입맛 때문에 아직도 김치를 담그는 내가 싫증이 나서 스스로 한탄을 하면서. 배추 4통은 담가야 김치통 하나가 채워진다.
우선 배추를 골고루 잘 절였다. 배추 속은 새우젓 대신 생새우와 물오징어를 썼다. 거기에 배와 잡곡밥(쌀밥이 없어서)까지 함께 갈아서 미리 고춧가루로 물을 들여 놓은 무채에 파 마늘 통깨 생강 소금을 넣고 버무리면 맛있는 양념무채가 된다.
배추 한 켜 한 켜에 양념무채로 곱게 속을 넣은 후 마침 만들어놓은 멸치다시(멸치+마른 새우+표고버섯+다시마+양파+무를 넣고 푹 고은 것)를 간을 해서 국물로 부어 익혔다. 서울 김장만큼은 아니라도 담백하고 칼칼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김치값을 올릴 수 없으니 배추를 덜 절여서 양이라도 늘이려는 상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격을 제대로 받으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팔았으면 하는 게 소박한 희망이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들도 마찬가지다.
설탕과 미원으로 맛을 내려하지 말고 집에서 만들어먹는 반찬처럼 짜지 않고 달지 않고 산뜻하게 만들어 팔면 얼마나 좋을까.
더 답답한 일은 식당들의 피튀기는 밑반찬 경쟁이다. 점심 스페셜이 8달러쯤 하는데 밑반찬이 13개나 깔린다. 내가 만일 찌개를 주문했다 하면 찌개까지 14첩 반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찬들은 무한대 리필이다.
주문한 찌개는 손도 대지 않고 바닥에 깔려 있는 반찬만 먹어도 반찬이 터무니없이 많이 남는다. 약은 외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한국식당을 애용하고 있고 알뜰주부들은 그렇게 점심 스페셜을 사먹고 찌개는 고스란히 집에 가져가서 저녁밥상에 올린다는 이야기들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만일 내가 집에서 14가지의 반찬을 만들어 먹으려면 도대체 얼마치의 시장을 봐야 할까. 상상해본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많은 밑반찬을 손님에게 제공하고서 무슨 이익이 남을까. 그렇다고 그 많은 반찬을 사람들이 다 먹는 것도 아니다. 식당 주인의 말로는 반 이상이 쓰레기로 나간다고 한다.
반이나 나가는 쓰레기의 재료비와 인건비를 생각해보라. 밑반찬 많은 집으로 밥 먹으로 가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정말 낭비는 낭비다. 우리가 한 끼 밥을 먹는 데 꼭 그렇게 많은 반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 사는 일은 살면 살수록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지난해 9월부터는 세계적인 경제위축으로 우리 동포들의 비즈니스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제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영은 벗어나야 한다.
서로 살기 위해서는 식당은 반찬 수부터 줄여야 하고 소비자들도 합리적인 기대치로 호응해줘야 할 것이다.
식당 주인들이 담합해서 밑반찬 줄이기 운동을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파리의 유명한 한국 바비큐(불고기 갈비)집은 반찬이라곤 숙주나물과 시금치나물 딱 두 가지라도 너무 잘 돼서 분점이 세 군데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