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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자살

New York

2009.06.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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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건 목사/빛 교회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차례 외침의 경험 속에서 그들을 다스리는 강한 지도자를 원하였고, 그들의 요청에 부응해서 하나님은 사울 왕을 세우셨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연약한 지파 베냐민 족속 출신이었다.

초대 왕을 세우는 일에 가장 약한 지파에서 왕을 세우신 배경에는 하나님의 독특한 긍휼의 정신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신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고 섬겨야 한다. 성경 속 지도자들은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나타난 모든 영광은 곧 하나님의 몫이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정작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서도 그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이 왕을 찾을 때 행구 속에 숨어 있었다. 일부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멸적인 말을 할 때도 그는 잠잠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는 블레셋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가벼움과 경솔함이 드러났다. 그는 쉽게 말을 뱉어 내는 사람이었다.

전쟁의 날에 병사들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경고했다. 자기 아들 요나단이 이 경고를 모르고 음식을 먹었을 때는 그 아들조차 반드시 죽을 것이라 말했다가, 백성들의 간청을 듣고 그 말을 취소한다.

지키지 못할 말을 함부로 발하는 그의 모습은 왕으로서 무게를 드러내지 못하고 경박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사울은 전쟁에 승리 후에 자기 자신을 위해 단을 쌓았다.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온 하나님에게 단을 쌓아야 마땅함에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었다.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 순종하고는 하나님을 순종했다고 변명했다. 그는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마지 못해 자신의 허물을 인정했으나, 구차한 변명으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이스라엘의 왕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버리시고 다른 왕을 찾으셨다. 사울을 대신해서 왕으로 세움 받은 이가 다윗 왕이다. 사울은 다윗의 존재를 눈의 가시처럼 여기고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의 명운이 다해가는 시점, 그는 위기를 벗어날 방도를 찾기 위해 무당을 찾아갔다.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어둠의 세력을 찾아가 도움을 찾는 것은 가당치 않은 행위이다.

그는 마침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퇴하고 패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칼에 엎어져 자살하였다. 이스라엘 초대 왕의 말로는 험하고 부끄러운 죽음이었다. 그 까닭은 그가 처음 부름 받은 겸손을 잃고 스스로의 영예를 구했던 일, 하나님의 뜻을 좇기 보다는 자기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는 유독 변명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울 왕은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그의 비극적인 인생은 삶을 잘 마무리 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자살은 신앙인의 관점에서 죄로 여기는 까닭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입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데 있다.

대개 자살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 독단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판단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좌절 앞에 달리 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스스로 끝내 버린다. 사울 왕뿐 아니라 가룟 유다도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 사람은 잠잠하다. 사람들은 자기 소견을 따라 앞서 간 자를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것이 정말 죽은 자의 의도였을까? 비극적인 자살은 비극적인 자살일 뿐이다. 차라리 자살을 실행할 의지로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 옳다.

더구나 자살을 미화하는 것은 더 옳지 않다. 역사를 비뚤어진 눈으로 보는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후세를 위해서도 옳지 않고 선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죽음 뒤에 우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오직 만유의 심판자 앞에서 공정한 판단을 받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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