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5] '한국에 큰 경제적 이익 주겠다'
파병요청 서울 온 험프리 부통령 약속
한국 전투부대 독자 작적권 문제 비상
"1965년 여름 그 당시 15개 미 전투사단 7만5000명이 베트남에 주둔해 있었다. 맥나마라(미 국방장관)는 34개 사단 증원을 건의해 왔다. 만약 한국이 7개 사단 파병을 해 주지 않았다면 미국 병력 수준은 17만5000명 내지 20만 명으로 늘었을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회고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더라도 65년에 이미 미군 15개 전투사단이 주둔해 있는 가운데 곧이어 한국군 7개 사단이 파병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점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우리 장병이 전장에 투입(약 8년 6개월 동안 32만여 명 투입)됐다고 본다면 군사 측면을 떠나 한진 입장에서는 그만큼 장사할 수송 물량이 늘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군 7개 사단이 미군 34개 사단이 맡아야 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주었다는 부분도 언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군의 참전 지역이 그처럼 넓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월남의 전장 전체가 한진의 시장이었다고 유추해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물론 한국이 본격적인 전투부대 증파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66년 1월 1일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험프리 미국 부통령이 서울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한국군 증파 문제는 비록 한진의 조중훈 회장 말처럼 '사업가는 사업성이 있느냐만 파악하면 되는 일이지 정부가 월남에 무슨 목적으로 파병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는 냉정한 발언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부는 한국군을 통해 한진을 포함한 파월 민간업자들을 보호해야 했던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간략히 살펴 둬야 할 것 같다.
이미 언급했지만 정부는 경제발전이라는 국내 문제와 함께 북한 공산당에 당했던 한국전쟁을 생각할 때 공산주의자를 지구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싸우는 미국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북한의 남침으로 미군 1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한국 전선에서 발생했는데 미국이 증파를 요청하는 마당에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6.25 남침으로 유엔 16개국의 수많은 젊은 장병이 희생되고 1000만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 역사적 사실을 생각한다면 오늘날에 와서 아직도 사과 한마디 없는 북한에 한국이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을 돕는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무모한 온정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울로 날아온 험프리 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이 월남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50만 명의 병력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한국이 1개 사단을 추가로 증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는 일본보다 당연히 한국에 더 큰 경제적 이익이 돌아가게끔 하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맹호사단의 잔류연대 혜산진(惠山鎭)부대와 백마부대 등 4만5000 병력이 추가 증파되는 계기였다.
그러나 한진을 포함한 우리 기업들과 민간 파월 기술자들이 월남 시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한 파병이라든지 증파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존슨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한국군 7개 사단이 미군 34개 사단과 맞먹는 전투력을 지녔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독자적인 전술과 한국군만의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채명신 장군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성은 전 장관도 인터뷰를 통해 같은 증언을 했었다.
독자적인 작전권을 확보하지 못했으면 우리 기업들과 파월 민간업자들을 보호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였다. 증언의 일부 내용을 공개한다.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장군은 박 대통령을 만난다.
이미 육본 작전참모 부장으로서 비둘기부대 파병문제를 직접 다뤘던 그는 전투부대를 파병할 때도 박 대통령 앞에서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이 작전권 문제였다. 월남전이 발발했을 당시 채 사령관은 미군이 평화유지를 위해 비전투부대를 보내지 않고 만의 하나 전투부대를 월남에 파병한다면 한국도 전투부대를 보내는 것은 불가피하겠다는 예상을 했었다고 했다.
-왜 그렇게 예상하신 겁니까?
"6.25부터 생각을 해야 하는데 6.25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습니까. 김일성이 5년 동안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지원을 받아 가면서 군사력 증강에 광분해 압도적인 군사적 우세를 지니자 기습으로 남침해 온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때 일요일이라 전부 외출하고 장교클럽에서는 전방에 있는 연대장 사단장까지 불러다가 술 마시고 댄스파티 하고 아가씨 끌어안고 춤추고 25일 새벽 2시까지 그 짓하고 있었거든요.
그러고 2~3시간 후에 적이 쳐들어왔잖아요. 그땐 곤드레만드레 돼 가지고 육군 사령부 고급장교들은 전부 술에 나가떨어졌고 일요일이라 장병들은 외출 보내거나 농번기라고 해서 시골로 다 휴가 보내고 실지 병력은 반도 안 남아 있었단 말이죠.
그때 북한 괴뢰는 탱크 전투기 120㎜대포를 막 갈겨대며 기습적으로 남침해 왔잖아요. 그러니 우리 전투부대는 거의 괴멸된 상태지요. 그러니까 부산까지 그냥 진격해서 내려가면 끝이에요.
그러면 그걸로 대한민국은 끝장나는 겁니다. 그때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오늘이 있을 것이며 그때 싸운 상대가 공산주의자들 아닙니까. 똑같은 상황이 월남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미군이 비전투부대를 넣겠어요? 당연히 우리로서는 미군을 도울 수밖에 없고 전투부대를 원할 거라고 예상한 거죠."〈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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