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탓’은 주로 부정적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을 이른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동선을 숨긴 탓에 감염이 확산했다”와 같이 ‘탓’은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은 모순된다. 부정적 상황뿐 아니라 긍정적 상황에서도 ‘탓’을 썼다. 운율을 맞추려다 어휘적 측면은 배제된 채 굳어진 표현으로 보인다.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뜻하는 ‘때문’은 긍정적 맥락에서도, 부정적 맥락에서도 쓸 수 있다. ‘덕분’과 ‘탓’처럼 특정 맥락에 한정되지 않는다. “말투 탓에 외로운 사람, 말투 덕분에 행복한 사람”에서 ‘탓’과 ‘덕분’을 모두 '때문’으로 바꿔도 의미가 통한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로, 송창식이 노래한 것이다.
과거 이 노래를 인용하면서 여기에서 쓰인 ‘푸르른’은 표준어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운율을 중시하는 시나 노래 등에서 ‘푸르르다’가 많이 쓰여 왔지만 표준어가 아니어서 일반 글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푸르르다’ 대신 ‘푸르다’를 써야 했다. 즉 ‘푸르른 날’이 아니라 ‘푸른 날’이라고 해야 했다.
하지만 2016년 ‘푸르르다’가 표준어로 편입돼 지금은 쓰는 데 문제가 없다. 사전에는 ‘푸르다’를 강조해 이르는 말이라고 올라 있다. ‘푸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또는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푸르르다’와 ‘푸르다’는 의미는 거의 같지만 활용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