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대우실업의 이란 테헤란 지점장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김욱(66) 현 아가방앤컴퍼니 회장은 의아함을 느꼈다. 업무상 해외 근무가 많았던 그에게 유아용품과 유아옷 전문 매장이 없는 한국내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만 세 살과 두 살이었던 딸들에게 옷을 사주려면 재래시장을 뒤져야 했다. 1년 뒤 태어난 셋째 딸의 배냇저고리는 원단 가게에서 천을 떼다가 직접 만들어 줘야 했다.
이불과 요 역시 침구 매장과 재래 시장에서 따로따로 구입하는 수고를 거쳐야 했다. 젖병은 약국에서 파는 수입 젖병이 아니면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고 들어온 젖병을 구해다 써야 했다.
김 회장은 이런 현실이 오히려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아기용품 개발에 나섰다. 브랜드 이름은 창업 주역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아가방'으로 짓기로 했다. 순 한글로 기억하기 쉬운 데다 아가의 모든 것을 취급하는 매장이라는 의미가 잘 전달된다며 다들 무릎을 쳤다.
하지만 아기용품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데다 한국 기술로는 개발할 수 없어 일단 유명 수입 업체인 이탈리아 치코와 수입 계약을 한 뒤 79년 4월 아가방을 선보였다. 그러고는 하나 둘씩 치코의 제품을 벤치마킹해 한국화에 나섰다.
한국 아이들의 체형에 맞추는게 시급했다. 한국 아기들은 서양 아기에 비해 머리가 더 컸고 팔다리도 더 통통했다. 월령이 적은 아기 옷은 전체 사이즈에 비해 머리 사이즈는 커야 한다는 사실조차 잘 파악되지 않았다.
30년 전 직원들은 자녀와 조카 등을 총동원 가봉 과정 등을 통해 한국 아이 체형에 맞는 사이즈를 정해나갔다.
다음 난관은 제품 종류가 워낙 다양해 하청업체를 찾는 일. 양말 공장과 모자 공장 단추.지퍼 등 부자재 전문 소싱 업체들을 따로 수소문했다. 이렇게 조금씩 한국화를 시작해 수입하던 의류와 젖병의 한국화를 82년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