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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올바른 '내 탓이오'

이원익/재불련 이사

어느 종교 지도자가 '내 탓이오'라는 표제를 들고 나와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결국 다 내 잘못이요 내 죄에서 비롯된 것이니 남이나 주위 환경 또는 지금 처해진 여건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말씀이다.

이는 바깥보다 먼저 자신의 안을 잘 들여다보고 살핌으로써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좋은 업을 쌓고 나쁜 업을 씻어 나가면 결국 인과응보에 따라 우리의 삶이 차츰 좋은 쪽으로 갈피를 잡아갈 것이라는 불자들의 믿음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내 탓부터 한다지만 주위 환경과 여건을 잘 이해하는 것마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안은 물론이고 나의 바깥에서는 어떤 연유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조리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제대로 된 '내 탓이오'를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누가 무엇이 잘못 됐는지도 모르면 제대로 된 용서도 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그런 불행이나 재앙이 일어날 수 있게 방치하는 공범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내 안은 물론이요 바깥의 이해와 분별까지도 잘 한 후에 이 모두를 감싸안는 차원 높은 '내 탓이오'를 해야지 혼자 퍼질러 앉아 노는 무심한 아기처럼 아무 거나 마구 찍어 바르고 뭉갠다고 거룩하고 슬기로운 자태는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이 좋은 말씀을 무지에서건 악의에서건 잘못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불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덫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서양 여인이 인도에 가서 비참한 상태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몹시 마음이 아팠다. 사회의 밑바닥 계급으로 태어나 제대로 못 먹고 자란 데다가 학대를 받아 불구로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최소한의 사회적인 구호나 보호망이 쳐지지 않는다면 조만간 더욱 비참한 생애로 마감되리라는 것은 뻔했다. 임시 보호소에 거두어진 이 아이들을 너무 딱해 하자 수용소의 간부가 대꾸했다. '다 쟤네들 탓이에요. 쟤네들 자신이 전생에 악한 짓을 한 탓이지 누구 잘못도 아니에요.'

이 순간 그 여인은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얼굴 없는 학대자들과 무지한 사회 안이한 인식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내 탓이오' 하고 복창을 시킨다고 상상해 보라!

물론 전생 탓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는 것 맞다. 하지만 이 경우 전생 탓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아니다. 잘못된 제도 개선해야 할 환경을 잘 인식하지 못함이거나 알면서도 귀찮고 두려워 외면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여러 가르침 중에 제 편한 것만 가져와 써먹는 것에 불과하다.

불교에서는 말씀의 절대불변성을 우기지 않는다. 말이란 것도 본래 아침이슬 같고 번갯불 같아서 거품처럼 스러져 간다. 일점일획도 변할 수 없는 고정된 것은 없다. 실은 말을 떠난 곳에 참이 있다고도 한다.

꼭 같은 낱말과 문장일지라도 어느 방향에서 무슨 목적으로 언제 어떻게 쏘아 올렸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실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평범한 진리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여 남의 말을 그 본뜻은 제쳐두고 토막쳐 잘라와 제 입맛대로 우려먹는다. 흔하면서도 전형적인 왜곡이며 구업을 짓는 일이다. '내 탓이오'를 다짐하거나 권할 때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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