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의 향기] 점 보는 사람과 그리스도인
전달수 신부/성마리아 엘리자벳성당
또 마귀(魔鬼)가 남편에게 들어와 처자식을 해칠 수 있다고 한 후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면 기도발이 달아난다"며 입단속까지 시키고는 "영험 있는 기도로 마귀를 막아야 한다"는 무속인의 말을 듣고 한번 기도비로 수천만원씩을 주었다. 이 후 30여 차례에 걸쳐 6억원을 주고는 현금이 떨어지자 약속어음과 차용증까지 해주고는 모두 15억을 바쳤다는 기사였다.
경제적으로 불황인 요즈음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연구소에서 구직자 155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59.2%가 '취업 때문에 점을 봤거나 볼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하니 점은 미래를 위한 지침서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점술이 가장 활발했던 시대는 이씨 조선 말기였다고 한다. 일본을 비롯하여 서방 열강들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불안한 사람들은 믿을 곳이란 무속인들 밖에 없다고 여기고는 점집으로 몰렸을 텐데 결과는 어떠했을가?
무속인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갔으며 무엇을 했을까? 독립투사가 되라고 했을까 아니면 35년 간 고난의 길을 가라고 했을까? 결과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모두 행운을 점치고 살길을 찾으려고 했을 텐데 결과는 긴 세월 동안 일본인들로부터 당한 것 밖에 없었다.
이런 신자도 있다. "시어머니가 그러는데 '남편은 국록을 먹고 산데' 진짜 용하게 알아 맞추더라"라고 하면서 농촌진흥청에서 일을 하니까 과연 국록을 먹고사는 것은 사실이며 비신자인 시어머니가 미리 사주를 봐두었으니 새로 시집온 며느리에게 요즈음 같은 어려운 때에도 든든한 직장에 나가는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한 이야기이니 얼마나 흐뭇했을까?
우리나라에서 본당신부로 있을 때 어느 날 신자 집에서 장례미사를 지내고 나오는데 그 집의 막내 상주가 이런 말을 했다. "며느리가 이틀간 일을 하다가 어제 밤에 쓰러져서 오늘 장례식인데도 일어나지 못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객구 걸렸다고 야단입니다. 신부님이 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들리셔서 기도 좀 해주고 가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청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객귀'(客鬼)를 객구라고 한다. 나는 성당으로 오던 길에 그 집에 들렸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았더니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날씨가 더운데다 잠도 못 자고 이틀 밤이나 밤새기를 했으니 그럴 겁니다"라고 안심을 시킨 다음 함께 간 신자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성가를 부르는 사이 나는 큰 소리로 구마 기도와 다른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동안 그 여자는 울고 있었다. 알고 보니 냉담신자였다. 냉담 신자는 하느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잘못이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초상집에서 나올 때 사람들이 "이 집 며느리는 일어서지도 못합니다"라고 했는데 벌떡 일어나면서 잘 가시라고 인사까지 했다.
기도의 힘으로 객구가 도망을 갔는지 아니면 기도를 통해 한참 눈물을 흘리고 나니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여성은 정상인 듯했고 그 뒤로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했다. 만사를 선으로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굳은 믿음으로 만사를 맡기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강한 자들일까?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