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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18] '여보, 나 내일 월남으로 떠나'

조중건, 출발 하루전에야 부인에 얘기
재계에선 한진 두 형제 우애 부러워해

그러나 막상 떠날 때는 조 상무도 불안을 숨기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전쟁 중인 나라에 기업의 장래가 걸린 신작로를 닦으러 출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심적 부담이 여간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집사람한테도 딱 떠날 때쯤 알리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불안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배짱도 생겨요.

내가 한국군에서 소금국도 먹어봤고 일선에도 가 있었고 미국 군대도 가 있었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접시도 하루 2시간씩 닦아봤고 신문배달도 해봤고 내 나름대로는 인생의 밑바닥을 다 걸었는데 전쟁이야 한국전쟁도 경험했잖느냐 그런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 거지요.

1월 22일이 구정입니다. 잔뜩 차려 먹고 내일 떠나는데 이젠 말을 안 할 수 없잖아요. '여보 나 내일 월남 간다.' 깜짝 놀라는 거죠. 더구나 전쟁을 하는 곳인데."

-그걸로 작별 인사는 끝입니까?

"끝이긴 이혼 당하는 줄 알았지. 하하하. 걱정하지 말라고 계속 달래지만 그게 됩니까? 전쟁터로 간다는데. 기가 막히고 구정이고 뭐고 없어요. 미쳤다는 거지. 붙잡고 말리고 난리예요.

근데 우리 집안은 위계질서가 대단합니다. 형님이 금광에서 돈 냄새가 난다고 어느 정도 나는지 조사를 해보라고 해서 가는 거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울다가도 아무 소리 못해 하하하."

실제로 한진그룹 창업주의 가족사는 재계에서도 어두운 소리 나오지 않고 화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조 상무는 모든 것이 '형수'에게서 나온다는 얘기를 했다. 객담일 수 있겠지만 경제인들과는 대체로 업무적인 얘기만 하다가 가족사를 듣게 되는 것은 퍽 흥미있는 일이기도 해서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 집안이 말이죠 우선 형수님부터 보면 서울토박이고 내가 알기에는 우리 형수님의 아버님이 경리 출신입니다. 옛날의 서울토박이라면 샌님이라고도 하지만 양반 기질이라는 게 꽉 자리 잡고 있잖아요.

거기다가 원칙적이고 깐깐한 그런 부친 밑에서 아주 철저하게 가정교육을 받은 형수님이라 시집와서도 집안에서 풍파를 일으키거나 어떤 문제로 시끄러운 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했어요.

형제들끼리 싸운다? 아예 그런 일은 싹부터 잘라서 없게끔 만들고 내 기억에도 그런 문제는 일으키지도 않았고 전혀 없었어요. 서로 얘기할 게 있으면 다 하도록 하고 이해를 해서 풀도록 하고.

그래서 집안의 질서를 지키려고 정말 노력하고 애들 교육도 그런 쪽으로 아주 철저하게 시키고. 그게 안 됐으면 우리 형님이 기업을 일으키고 밖에서 그렇게 일을 하기가 어려웠겠죠. 집안이 시끄럽거나 우환이 있거나 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신경이 쓰이는데 무슨 일을 해요.

특히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가정적인 뒷받침 없이는 절대 될 수가 없지요. 더구나 형님은 만날 바깥으로 나가고 바깥에서 일을 만드는 분인데. 그런 걸 가만히 생각하면서 형수님을 보면 참 많이도 참고 희생하고 있다는 걸 여러 번 느끼게 되지요."

사실 조중훈 회장의 근엄하면서도 정적인 언행과 조중건 고문의 동적이고 사교적인 모습에서 재계 사람들은 형제만 봐도 부럽다고 했을 정도였다. 에피소드지만 두 형제를 비교하는 일화도 있었다. 형이나 동생이나 고객이든 회사의 중역이든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동의를 할 때 '예스(yes)'를 쓰지 않고 '슈어(Sure)'라고 하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래서 한때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의 '슈어'가 유행어처럼 한진그룹에 번지기도 했다. 외형적으로도 두 형제는 다른 면이 많지만 조 고문은 가령 비행기를 탔을 때 승무원들에게 뜨거운 것은 아주 뜨겁게 차가운 것은 아주 차갑게 하도록 주문하기로 유명했다.

식사는 물론 승객에게 손을 닦으라고 주는 물수건도 받는 순간 집어 던질 정도로 뜨겁게 해야 좋다는 것이고 커피도 혀가 델 정도로 해야 '잘했어' 그랬다.

조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회장은 예민하면서도 무척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조양호 회장은 위트 있고 거침없이 얘기하는 승무원이 되라고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 갔지만 수더분한 여승무원하고 있었던 일화다. 어떤 나라의 전통음식이 나왔을 때 조 회장은 '이걸 만드는 나라에서는 침을 발라가면서 만든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 여승무원은 거침없이 '그러면 제가 침을 발라서 만들어 드릴까요?'했다는 것이다. 조양호 회장이 손사래를 치며 막 웃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해왔다.

-이제 월남 시장을 개척해야 될 상황이 왔잖습니까. 다소 심적인 중압감이 있었고 더구나 한진이 첫 해외 진출인데 어떤 준비를 하신 겁니까.

"솔직히 준비는 타이프라이터 한 대밖에 없었고 어떻게 되든 일단 월남 땅을 밟고 보자 문제가 있으면 거기 가서 해결하자 그런 각오였어요. 그런데 나는 지금도 사업이라는 게 운이 참 중요하다 운이 따라야 하겠습디다. 아이디어도 있어야지만 사업은 운이 착착 맞아 들어가야 돼요.

무슨 얘기냐 하면 그날이 구정이고 마음은 무겁고 한데 오후에 전화가 와요. 노스웨스트 항공사 지점장인데 마이클 장군이 서울에 와서 나를 찾는다는 겁니다. 마이클은 그 시점에서 2년 전에 대령 달고 8군 수송감을 하다가 미국에 가면서 장군이 됐어요.

그 당시 직책이 뭐냐 미 육군의 전체 수송감이야. 대단하죠. 그 사람이 나를 찾는다는데 귀가 번쩍할 거 아닙니까? 당장 전화를 했지요. 나하고 굉장히 가까웠어요. 너 언제 왔느냐 지금 거기로 갈 테니 기다려.

그런데 구정이니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술을 먹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내일 월남에 간다고 하니까 왜 가느냐고 돈 냄새 맡으러 간다 누굴 만날 거냐 제너럴 하인카스 부사령관이 내 친구 아니냐고 그 친구한테 도움을 받을 생각이라고 그랬지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대뜸 헛다리짚지 말라고 그러네? 일순간에 멍해지는 거지요."〈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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