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역할과 개입은 경제위기가 심각할수록 커진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 속에 오바마 정부는 휘청거리는 대기업들을 살리는데 적극 뛰어들었고 막대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감독 체제를 재정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표명했다. 정부가 발벗고 나서 미국 경제 자체를 새롭게 정비하는 모습이다.
정부와 민간 경제의 관계는 진자의 움직임 처럼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해 왔다. 민간 경제는 2차 세계대전부터 대공황 전까지 정부의 힘을 누르고 승승장구했다.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당선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정부는 막강한 힘을 행사해 왔다. 레이건 대통령 취임 무렵부터 여론은 정부의 개입을 강력히 반대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민간 경제가 다시 패권을 쥐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였다.
지금은 또다시 반대 움직임이 대세다. 정부의 손에 의해 경제 각 분야가 모양을 새로 갖춰가는 중이다.
이제 기업은 규제와 감독 아래 정부와 새로운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작은 정부’가 초래한 문제들을 ‘큰 정부’가 해결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강력한 감독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헤지펀드와 금융 파생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대형 금융회사들의 자본 기준을 높이는 등 개혁안도 제시했다.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신뢰와 공정성 문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금융기관들은 스스로 자신을 감독해 왔고 신용평가기관은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신용평가기관이 증권 발행사들로부터 평가 비용을 지불받는 종속적 구조를 바꿔야 객관적 등급이 매겨질 수 있다.
최고 경영자들의 과도한 보수를 제한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부의 직접 규제보다는 주주들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간접적으로 통제하면 더 효율적이다.
‘큰 정부’란 억제와 정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규제를 통해 자유시장 경제를 억누르기 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경제 각 부문이 활성화될 수 있다. 공공 이익을 해칠 수 있는 민간 기업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 이익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보상하고 격려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이다.
이같은 전략을 통해 정부와 기업은 밀접한 상생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강화가 기업에 족쇄를 달아 성장과 혁신을 더디게 한다는 해석은 잘못이다. 오히려 정부는 재생에너지 기술, 전기자동차 공급 등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연구 개발과 그린 에너지 보급을 장려하고 있다.
이같은 투자는 기후 변화를 억제하면서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너지 효과로 이어진다. 정부 개입과 규제 강화가 경제 회복과 성장을 자극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몸살은 민간부문의 혁신과 성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공공의 이익도 창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시장 경제의 자율성 원칙이 여전히 보호되면서 정부와 시장이 균형잡힌 조화를 이루는 바람직한 혼합경제 체제가 차분하게 자리를 잡아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