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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옛날 이야기

New York

2020.10.1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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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해줄 무엇도 많지 않았고 흔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른들에게 “옛날얘기 해주세요” 졸라대어 겨우 하나 들어볼 수 있었다. 이야기라고 해봐야 그것은 옛날이야기였다.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줄거리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얘기해주세요” 하는 성화에 못 이겨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친척 어른들의

알지만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어하며 듣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것은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머리나 꽁지 혹은 이야기의 그림자만 어스름하게 기억되고 있다. 가끔 아이들 그림책, 우리네 옛이야기 묶음 책에서 그것들을 발견하고 다시 만나는 옛 친구처럼 반가운 마음이 일기도 한다. 옛날이야기가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그때의 어린이 마음을 불러내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옛날이 언제였기에 어른들의 이야기 머리말은 항상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였을까. 조선 시대인지 고려 시대인지 삼국 시대인지 더 올라가 고조선 시대인지 아득한 시절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다. 나라도 국경도 없는 멀고 먼 그리고 아주 먼 어느 곳에서 아마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그렇게 시작하는 얘기해주는 사람 마음대로 가지 치며 만들어지는 우리들의 숨결 같은 것이었다. 그 역시 어느 어른에게서 들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재미있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되살려 아이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실상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을 것 같다. 이제는 잃어버린 즐거운 일을 생각해 본다. 내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들어 줄 아이들이 없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더 재미있게 더 흥미롭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새로운 방법이 많아 서툰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어줄 인내심이 없어져 버렸다. 둘러앉아 전해주고 전해 받는 그 정겨운 시간과 자리와 그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쉽다.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오르던 호랑이는 떨어져 수숫대에 붉은빛을 남기고 하늘에 오른 남매는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 덕분에 수숫대의 붉은 색이 정말 그때 죽은 호랑이의 핏자국이라고 믿을 뻔 한 어린 시절의 순진함을 되돌아본다. 그렇게 내 속에 하나씩 쌓여간 이야기의 색깔 층이 지금도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문득문득 드러나며 바라보는 세상을 채색하고 있음을 느낀다. 옛날이야기가 옛날에 있었고 옛날에 죽어버린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호랑이는 더 무서운 괴물이 되어 힘없는 남매 같은 도시의 작은 시민을 위협하고 쫓아 오며 길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막아선 높은 담장을 넘어갈 수 있는 날개 달린 신발로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을 꿈꾸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다.

옛날이야기의 앞에는 아마도 신화가 있을 듯 하다. 평범하게 걷고 뛰는 존재가 아닌 날아다니는 정신의 이야기들이 끝없는 시공간에 펼쳐진다. 이제는 현재가 되어버린 그 이야기의 뒤에도 신화가 있을 듯 하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능력이 훨씬 확대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어떤 한계 때문에 답답해하던 삶의 이야기에 엄청난 능력을 갖춘 초월자가 있어 또 끝없는 우주를 가르며 현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옛날이야기는 그런데도 결국은 그것들의 중심에 남아있다. 우리의 마음속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곳에 자리 잡고 있어 신화의 세계에도 초능력의 세계에도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상관 없이 옛날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어린이의 마음은 그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있는 그 이야기와 동행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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