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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반야의 세계' 엿보기

이원익/재불련 이사

불교에서는 반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본래 옛날 인도의 산스크리트 말로 프라즈냐 라고 하던 것인데 중국 사람들이 그 소리를 한자로 베끼면서 반야가 되었다.

반야가 뭐냐고 한다면 여러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내 나름으로 간추리고자 한다.

반야란 지혜 또는 슬기라는 뜻인데 이는 곧 공을 아는 것이다. 공이 뭐냐고 하면 세상에 언제까지나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씀이고 따라서 뭐는 반드시 이렇다 이래야 된다고 하는 고정관념을 갖지 않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왜 생겼을까? 그게 편하고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대할 때마다 밑바닥부터 다시 살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나 세상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여기고 있는 대로 그냥 따라가도 맞을 확률이 높고 머리 쓸 일이 적어 에너지를 적게 소비한다. 따라서 살아남고 번성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생물학적으로 불리할 확률이 높아졌다. 자신이 살아남기에도 고달프고 자식을 낳아 키워 결혼시키고 때맞추어 손자 손녀를 볼 기약도 멀어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세상이 지리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별 희한한 일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 다양성과 복잡성 때문에 이전의 고정관념만으로는 난마와 같은 세상사를 갈피조차 잡기가 어려워졌다.

일례로 머리칼 하나만 해도 그렇다. 다 검거나 나이 들어 세면 흴 줄만 알았지 무슨 귀신도 아니고 처음부터 노랗거나 붉은 것도 있을 줄 알았던가! 한 마디로 뭘 모르는 촌놈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100년 걸리던 일이 몇 달 며칠 사이에 이루어지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제 할아비는 손자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고 할미는 손녀의 짓거리를 눈 뜨고 못 볼 지경이 되었다.

유행도 너무 빨리 바뀌니 웬만한 물건이 몇 달 안에 구닥다리가 된다. 사내애는 이렇다 계집애는 이래야지 하는 따위가 씨알도 잘 안 먹힌다. 속된 말로 자칫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귀찮은 꼰대가 돼 버린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정관념이며 공이란 것은 이런 세태보다는 더 근원적으로 말과 개념에 얽힌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의 참 모습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무엇이 좋다 나쁘다고 할 때 그 말이 나타내는 늘 정해진 고유한 자리가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누구에게는 좋은 일이 동시에 누구에게는 나쁠 수 있으며 같은 사람에게라도 어제까지는 그게 좋았는데 오늘부터는 싫은 일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오고 날씨가 으스스하면 비디오 가게가 잘 되는 날이다.

하지만 바로 옆의 리커 스토어는 파리를 날려야 한다. 어느 날이 좋은 날인가? 어제까지 비디오 가게를 하다 새로 리커 스토어를 열었다면 이제부터는 날마다 쨍쨍 더워서 사람들이 허겁지겁 음료수를 찾아야 흐뭇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나는 더위를 좋아하는 자인가 추위를 반기는 자인가?

도대체 날씨라는 것에 좋고 나쁜 게 있기나 한 것인가? 날씨라는 앞대가리는 빼고 그냥 좋음이라는 것과 나쁨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인가? 있더라도 다 상대적인 것이고 정도의 차이가 아니던가!

이렇듯 좋다 나쁘다 따위의 한 가지에만 달라붙어 오직 절대적으로 그런 줄 안다면 고정관념이요 그렇지만은 아닌 줄 눈치채면 공을 엿본 것이리라. 더 나아가 쨍하고 해 뜬 날엔 비디오 가게가 마음에 켕기고 으스스 찌푸린 날엔 건너편 리커 스토어가 염려된다면 그대는 이미 반야의 세계를 조금 훔쳐 본 자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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