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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인간, 또 다른 모습은…뉴욕 찾은 ‘박쥐’ 박찬욱 감독

New York

2009.07.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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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준비한 자전적 이야기 담은 작품…31일 맨해튼 개봉 후 미 대도시서 상영
박찬욱 감독이 신작 ‘박쥐(Thirst)’의 개봉을 앞두고 뉴욕을 방문했다. 박 감독은 20일 저녁 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에서 ‘박쥐’의 특별 상영회 후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깽’을 원작으로 한 ‘박쥐’는 주인공을 흡혈귀가 된 신부로 설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불륜과 살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빌려왔다.

고아로 자라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 분), 병약한 어린시절 친구 강우(신하균 분), 그의 불만스런 아내 태주(김옥빈 분)가 만나며 욕망과 배신, 그리고 살인의 변주곡이 연주된다.

올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작인 ‘박쥐’는 오는 31일 맨해튼 랜드마크 선샤인시네마와 LA 렘멜선셋, M파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브리지 시어터에서 개봉된다. 이후 미 대도시에서 순차적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박 감독과의 토론회는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의 비평가 개빈 스미스가 이끌었다.

우유부단한 신부는 ‘자화상’
-‘박쥐’는 10년동안 기다려온 꿈의 프로젝트라고 했는데.


"10여년 전 어느 날 밤 문득 생각난 스토리로 제작한 이 영화는 나의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다. 집안에서 부모가 천주교 신자였고 나 자신이 고등학교 때까지 성당을 다녀서 가톨릭 이야기가 근간이 됐다. 주인공에 나 자신이 투영된 인물은 처음이다. 무언가 우유부단하면서도 궤변을 늘어놓기 좋아하며, 말도 되지 않은 행동을 하고 합리화하는 성격이 나와 닮아 가깝게 느껴진다.”

-스토리의 출발점은.

"천주교 신부는 직업상 미사를 드리도록 되어있다. 미사는 포도주를 예수의 피라고 생각하면서,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마시는 의식이다. 신부는 피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을 하면서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자신을 위해 남의 피를 마셔야하는 존재가 됐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클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많은 영화에서 기독교와 뱀파이어를 연관시킨다. 뱀파이어가 되는 신부로 설정한 이유는.

“가장 고결한 인물이 도덕적으로 전락한다는 설정으로 그 낙차의 폭이 커진다.”

-이야기에서 모든 퍼즐을 꿰맞추는 아이디어가 있었나.

“여자를 어떻게 뱀파이어로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처음엔 친구의 아내가 아니라 신부가 일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설정했었다. 병동 안에서 자기의 피를 말기 불치병 환자들에게 미사 집전하듯이 나누어주어 모든 환자들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호러·코미디·멜로드라마·가톨릭·프랑스 문학까지 여러가지 장르를 혼합한 콜라쥬인듯 하다. 감독의 우유부단함과 상통하는 선택인가.

“‘박쥐’는 외부 침투에 수락이거나 거부이거나, 어떤 반응에 대한 영화다. 가톨릭도 뱀파이어도 서구에서 온 것이며, 신부가 매우 자족적인 3인 가족에 개입하는 것도 밖에서 안으로의 침투인 셈이다. 여자가 신부에게 ‘너는 세균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스토리보드가 비결
-영화에 콘트라스트가 많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라 여사의 한복집에서 마네킹은 한복용 마네킹이 아니라 양장용이다. 서양 마네킹이 한복을 입은 것은 한국 관객에게 무척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음악 또한 같은 컨셉으로 극단적으로 대비시켰다. 신부는 바흐의 칸타타 중 아리아를 듣지만 라 여사와 아들 강우는 일제시대 유행했던 구닥다리 한국의 대중가요(이난영, 남인수), 그것도 LP로 듣는다.”

-배우를 지도하는 특별한 비결은.

“이 영화에선 전에 함께 일하던 배우들(송강호, 신하균 등)과 새로운 배우들(김옥빈 등)이 반반씩 섞였다. 알던 배우들은 너무 익숙해서 느슨해지기 쉽지만, 새로운 배우가 있어서 긴장감이 생기기도 한다. 새 배우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미리 들어 알 수 있게 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첫째는 시나리오를 자세히 쓰고, 철저하게 스토리보드를 만든다. 특히 정사 장면은 스토리보드로만 봐도 영화를 본 것처럼 상세하게 그렸다. 둘째 방법은 배우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다.”

-가장 영향을 준 감독은.

“한 분을 꼽으라면, 김기영 감독이다. 대학 시절 김 감독의 영화, 특히 ‘하녀’를 보고 영감을 많이 얻었다.”

-관객들이 어떤 질문을 갖고 나가기를 바라나.

“신부가 가장 숭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인류를 특정한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생체실험을 했다가 그 결과가 악한 행동을 유발하게 된다면 죄의식을 갖는 것이 정당한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는가? 신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행동을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인물이다. 우유부단하고 못난 인간이지만 결국 영웅적인 품격을 갖게 된다.”

▶상영일정: 7월 31일부터.

▶랜드마크 선샤인시네마: 143 East Houston St.(212-330-8182).

박숙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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