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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23] 깐깐한 미국 계약관과의 기싸움 한판

수의계약 아닌 경쟁 입찰 고집
미 부사령관 찾아가 대세 역전

먹이가 눈에 보이면서 조중건 상무는 흥분될 정도였다고 했다. 퀴논 항에 쌓여 있는 물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형인 조중훈 회장이 황금 광맥을 발견했다고 박정희 대통령과 장기영 부총리에게 보고해 흥분하게 만들었던 곳이 바로 여기구나 싶더라는 것이다.

사실 정부로서는 기업인들에게 달러를 벌어들이라며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럴 때 선박에 실린 채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곧바로 한진에는 금광이었고 정부엔 달러 박스가 되는 셈이었다. 조 상무는 시동을 건다. 당장 계약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지체 없이 미군 전투 부사령관에게 제안서를 썼다.

군 지휘관들에게는 민원이 됐건 건의사항이 됐건 뭔가 근거 서류가 있어야 움직인다는 것을 조 상무는 알고 있었다.

"장군 퀴논에 가서 보니까 미국인들이 하역을 하고 수송을 한다는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러 가지로 답답하던데 우리 한진 같은 수송 전문회사에 맡기면 전쟁 목적을 최대한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와 수의계약을 하면 100일 내에 수송장비와 하역장비 인원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 주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쟁 예산을 절약하는 길이고 결과적으로 미국 납세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아니냐. 우리가 100일 안에 수송에 필요한 일체를 가져오지 못해서 작업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 하루 1만 달러씩 변상하겠다."

한마디로 과감한 제안을 한 셈이었다. 어쩌면 겁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하역장비는 주문생산이다. 더구나 생산이 완료된 시점에서 선적한다고 해도 100일 가까이 소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 상무는 무엇을 믿고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작부터 베팅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그래 놓고 조 상무는 계약관을 찾아간다. 실무자부터 만나 탐색해 보고 시작할 참이었다. 그러나 계약관인 '워터'라는 중령은 원칙주의자였다. 한마디로 수의계약은 '웃기지 말라'는 식이었다. 모든 계약은 경쟁입찰을 통해 최저가로 써낸 업자에게 준다는 것이다. 더구나 입찰에는 미국 회사와 필리핀 일본 그리고 월남 업체들도 참여시킨다는 얘기였다.

이 부분에서 계약관의 주장과 일치하는 증언이 있다. 수의계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계약관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니라 월남 정부의 강력한 요청이 이미 미군 사령부에 접수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월남 정부가 미군 사령부에 유감을 표명할 정도로 수의계약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오는 것은 67년 무렵부터지만 한진이 수의계약을 요구할 때도 월남 정부가 못마땅하게 주시했다는 것이 신상철 전 대사의 회고였다.

"사실 월남 정부가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 때문에 한진은 물론 많은 업체와 파월 기술자들이 심리적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티우 대통령이 굉장히 박 대통령을 좋아했어요. 그래가지고 구엔 칸 정권 때도 얘기는 있었지만 한국 방문은 티우 대통령이 먼저였단 말이죠.

그럴 정도로 박 대통령을 좋아했는데 66년 초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가 우리 장병들이 1년 임기를 마치고 현지에서 재취업이 막 이루어지고 하니까 상대적으로 월남인들 취업난이 심해질 거 아닙니까. 군인으로 와서 귀국도 하지 않고 현지에서 곧바로 취업하니까 말이죠.

처음에는 말이 없더니 외교문제가 되는 겁니다.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오면서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 그거지요. 월남인들도 취업을 시켜줘야 할 거 아니냐 그겁니다. 상당히 심각했고 미국 대사관과 미군 사령부에도 문제점을 제기한 거지요."

조 상무는 난감했다. 미국 업체나 일본 업체들과 경쟁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월남 사람과의 경쟁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수송과 하역은 반 이상이 인력인데 노무자들 급료 수준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결국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조 상무로서는 마지막 히든 카드를 생각하면서 우선은 하인카스 부사령관을 찾는다.

"방법이 없겠다 싶어요. 현장은 다 돌아봤고 노다지가 쌓여 있으니까 계약이 관건인데 워터라는 중령이 손톱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깐깐하니 어떡합니까. 하인카스 부사령관을 만나러 갔죠.

내가 보낸 제안서를 봤느냐니까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체하지 말고 당장 계약관을 만나 협의하라고 그래요. 남의 속도 모르고 만나면 뭘 해요. 만나보나 마나 그 친구가 얘기한 것이 있는데 뻔하잖아요.

그렇지만 혹시나 부사령관 앞에서는 마음이 변할지 모르겠다 싶어서 그 친구를 부사령관실로 불렀어요. 당황하더구먼.

근데 뭐 역시 수의계약은 어렵다는 겁니다. 부사령관 앞에서는 분명하게 말을 안 하고 어물어물 넘기면서 병참부서로 가자고 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서니까 딱 규정대로 입찰에 부쳐 최저가를 택하겠다고 강조하는 거야."

-원래 미국 사람들 원칙적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전쟁 중이고 군인들 아니오. 융통성이 있어야지 몇 달씩 전쟁물자를 쌓아 놓고 있으면서 무조건 원칙대로 할 일인가? 전쟁에 원칙이 있어요? 하여간 그 녀석하고 얘기한다는 자체가 기분 나쁜 거야.

백번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 친구하고 협상한다는 건 승산이 없어요.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누룽지만 놓고도 승부를 거는 월남 업체보다 우리가 저가로 입찰할 수 있겠어요? 해봤자 지는데.

그때까지는 내가 병참담당 부사령관을 안 찾아갔고 마지막 카드로 주머니 속에 넣고 있었지만 이쯤 되니 도리가 없어요. 사령부를 나와서 고민하다가 10여 일쯤 지나서 병참담당 부사령관을 찾아갔지요. 그랬더니 그 사이에 하인카스 부사령관한테 보냈던 제안서도 다 검토했고 내 친구인 마이클 장군의 텔렉스도 받았다면서 당신이 찰리 조냐고 왜 이제야 찾아왔느냐 계약은 했느냐?

이러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 주더라구요. 그런 분위기가 되니까 그 순간에 계약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나는 겁니다. 워터한테 퇴짜를 맞았다는 소리는 못하겠고 열불이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계속>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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