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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조오련의 '살찌우기'

Los Angeles

2009.08.0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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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하/탐사보도부 데스크
유오성.장동건이 출연한 영화 '친구'에는 어린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놀다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나?" 그 꼬마들은 지금 40대 중반이다. 애들 잡담에 불쑥 나올만큼 조오련은 유명했다.

'조오련'이라는 어감은 무언가 쑥 튀어 나가는 느낌마저 든다. 마치 '련'자 다음에 용수철이 부르르 떨고 있는 듯하다. '오련(五連)'이라는 이름은 5남5녀의 막내로 다섯 아들이 잇따라 이어져서 붙여졌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4일 영면했다. 심장마비로 추정되고 있다. 마침 이날은 그가 맨 몸으로 대한해협을 건넌 지 29년째에서 딱 일주일 모자라는 날이었다.

1980년 8월11일 0시5분 부산 다대포에 선 조오련은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 앞엔 지난 날의 영욕이 스쳤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 1500m 금메달. 한국스포츠 사상 최초 2관왕.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 1500m 금메달. 한국스포츠 사상 최초 2연패.

그리고 한국 신기록 50차례 경신. 하지만 동시에 굴욕감도 떠올랐다. 2년 전 방콕 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치자 "조오련도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가 귓전에 맴돌았다. 유명세를 타면서 하루하루 나태하고 안일했던 시간도 떠올랐다.

13시간16분10초를 헤엄쳤다. 53km. 똑같은 파도에 똑같은 몸짓. 그리고 마침내 '자신감'이라는 뭍에 두 발을 디뎠다. 자신감은 이후 도버해협을 갈랐고 한강 600리를 도강했고 독도를 33바퀴나 돌게 했다.

조오련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파도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아니었다. 살을 찌우는 것이었다. 두터운 살은 체온을 유지하게 하고 영양분을 제공하고 해파리나 냉수대로부터 '갑옷'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살을 찌우는 것은 살을 빼는 것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조오련은 내년 대한해협 횡단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번 그 물길을 가를 계획이었다. 환갑이 다 돼가는 나이지만 '도전'은 자신의 존재감을 되찾는 일이었다. 물과 정말 친구인지 마지막으로 알아보고 싶다고도 했다.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도 있었고 '마린보이' 박태환도 있지만 조오련이 가슴깊이 박혀있는 이유는 그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풍성한 삶의 철학도 있었다. 끊임없이 도전한 자만이 갖는 전리품이다.

"내 수영은 자연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에 몸을 맡겨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엔진만 꺼지지 않을 정도로 샤브샤브 고기 익히 듯 습자지에 먹물 스며들 듯 하는 수영이다. 원거리 수영에 나설 경우 너무 천천히 가면 추워서 못 가고 너무 빨리 가면 힘들어서 못 간다."

그는 한때 교만했고 나태했고 패배감에 젖었고 상실감에 빠졌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은 도전 또 도전이라는 것 또한 몸으로 보여줬다.

맞다. 그의 말대로 도전이 너무 급하게 이뤄지면 중도에 좌절하기 쉽고 너무 신중해 지체되다 보면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팽팽한 중간점을 찾는 것은 수많은 도전밖에 없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고 마구 움직이는 것보다는 뚜렷한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도전을 앞두고 조오련이 살을 찌우는 것처럼 도전 전에는 내공을 두껍게 쌓아야 한다. 그것은 열정의 온도를 유지시키고 유혹에 견딜 수 있도록 갑옷을 입힌다.

'물개' 조오련이 남긴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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