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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다시 채색할 당신의 ‘데콜라주’

Chicago

2020.12.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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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어둠 속을 달린다. 날이 새면 어둠은 먹물을 머금은 채 대지로 스며들고 쟂빛 물감은 상아빛 햇살에 머리 풀고 허공을 맴돌 것이다. 지평선 저 멀리 병정처럼 나란히 줄을 선 나무들은 서러움 견디며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잎들이 떠나버린 가지는 뼈마디가 굳어져서 부둥켜 안고 흐느낄 생각조차 못한다. 삭막한 겨울의 언덕에서 할 일은 목숨 버티고 살아남는 길 뿐이다.

쏜살같은 세월은 하염없이 흘렀는데 올해 하루 하루는 너무 길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사랑하는 일도 작별하는 시간도 모두 힘든 한 해였다. 죽음과 삶이 서로 엉겨붙어 갈피없이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았다. 새벽이면 눈 뜨고 맞닥뜨릴 하루가 무섭고 아침상 앞에선 몇 봉지 식료품 배급 받기 위해 끝이 안 보이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떠올랐다. 주변에 사업 접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비정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 하루 버티기 힘든 사람들에겐 매일 사는 일이 절망이고 고통이다. 이 참담한 아픔을 도려내고 견디면 소망의 내일로 향할 수 있을까.

메모리나 기억 매체에 기억되어 있는 데이터나 프로그램 등의 정보는 삭제하고, 공백인 ‘0’ 상태로 돌려 놓을 수 있다. 프로그램 속의 버그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 부분을 삭제하여 그 부분에 바른 문장(Statement)을 입력하여 고치면 된다. 인생은 삭제(Delete) 키가 없다. 되돌릴 수도 없다.

그림을 잘못 그렸거나 맘에 안 들면 데콜라주 기법 ‘지우기(Verwischung)’를 사용한다. 부식제(腐植濟) 또는 색을 덧칠함으로써 사진이나 그림을 부분적으로 말소하는 행위인데 말소나 제거할 때 발생하는 단편(斷片)이나 이미지의 중복 등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신선감이나 흥미 있는 효과가 발생한다.

‘풀로 부친다’는 뜻의 콜라주(Collage)는 브라크와 피카소 등의 입체파들이 유화의 한 부분에 신문지나 벽지•악보 등 인쇄물을 풀로 붙여 화면의 구도와 채색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이즘 시대에는 실밥•머리칼•깡통 등 전혀 이질적인 재료나 잡지의 삽화나 기사를 오려붙여 이미지의 연쇄반응으로 인한 부조리와 냉소적인 충동을 겨냥했다.

‘콜라주를 찢는다’는 뜻의 ‘데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독일의 볼프 포스텔(Volf Vostell)은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뜯거나 다시 붙인 다음 그 위에 사포(砂布)질을 한 후 너절한 콜라주풍의 작품을 제작했다. 나치 학살장면이나 월남전의 총살장면 등의 기록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재생했는데 인간의 본능 속에 있는 파괴적 충동이 작품사진을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표출한다. 포스텔은 ‘데콜라주 6번’(1963)에서 우페르탈역에서 전속력으로 달려 오는 2대의 기관차와 직접 전속력으로 운전 하는 벤츠 승용차를 정면에서 충돌시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파괴적인 작품 속에는 베를린 장벽이나 미국의 흑인문제 등에 관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절망에게 배운다. 생이 갈기갈기 찢어진 포스트라 해도 다시 붙이고 고치고 가다듬고 재창조하는 책무가 ‘인생’이란 글자 속에 있다. 심장의 고통을 도려내고 구멍 뚫린 가슴을 뜯어내며 새 살 붙이고 피를 돌게 하는, 절망을 희망으로 되살리는 생의 ‘데콜라주’를 창조하는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나락으로 떨어져 죽을 만큼 괴로와도 다시 채색할 빛나는 생의 데콜라주가 당신 손 안에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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