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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광복 64주년

Los Angeles

2009.08.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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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규 / '삼일의 약속' 저자
나는 18년 전 KBS-2 TV에서 6개월 동안 목금 드라마로 방송했던 '삼일의 약속' 원작자 정동규입니다.

미국 LA근교에 있는 롱비치 메모리얼 병원에서 심장과 의사로 38년간 재직하고 있는 내가 최근 병원 식당에서 동료의사들과 점심식사를 하던중 메이져 TV뉴스를 통해 한국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치고 받는 난장판을 벌이는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우리 민족이 치욕의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 8.15 광복을 맞은지 64주년이 되는 오늘. 나는 과연 이것이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킨 조국의 오늘날의 모습이어야 할까?

더구나 조국 방위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육군사관학교의 적지 않은 생도들이 의식 조사에서 대한민국의 주적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는 답변을 했다니 이것이 진정 부모와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남하한 후 생사를 넘나들며 지켜낸 조국의 참 모습이어야 할까? 나는 깊은 자괴감으로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첨단 IT기술이 세계를 누비고 LG 삼성 등 한국 상품들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현대 기아 등 한국 자동차가 세계 거리 거리를 달리고 골목을 누비는 21세기의 조국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나는 64년전 오늘(8월 15일) 만주 할빈에서 어머니와 누니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천왕의 떨리는 목소리를 아직도 어제의 일인 양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13살 나이인 나는 그 후 가족과 함께 고향인 함경북도 주을로 돌아와 학교에 다녔으며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폭풍'이라는 전쟁 신호와 함께 전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워 남쪽으로 밀고 내려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즉 바로 다음날 김일성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지금 남쪽에서 북으로 치고 올라오기에 우리 북한군은 남쪽과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으며 오는 8월 15일에는 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축제를 서울에서 갖겠다"는 방송을 분명히 들었다.

북한에서 당시 나와 함께 자유를 찾아 남하해 우리 수색중대에 배치된 중대원 156명 가운데 휴전 후에 살아 남은 동료는 겨우 26명에 불과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내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군에서 나와 갖은 역경 끝에 메디칼 스쿨을 졸업한후 미국으로 진출했고 심장 전문의가 돼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 특히 나를 몹시도 사랑하셨던 어머니와 헤어질때 "3일 만에 돌아 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드디어 1983년 그 기회를 갖게 되었다.

33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을 찾아 누이들은 만날 수 있었지만 나를 그렇게 못 잊어 하시던 어머니는 이 세상분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그리고 아쉬움과 그리움을 안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마치 드라마 같은 나의 일생을 영문판으로 엮어 출판했다. 제목은 'The Three Day Promise.'

이 책은 당시 미국의 유명한 언론인 디어 애비가 1200개의 메이저 언론에 소개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베스트 셀러가 됐고 하루에도 5000여통의 격려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나는 책의 판매 대금 전액(50만달러)을 워싱턴 한국 전쟁기념탑 건립에 기증했고 기념탑 건립식에 초대돼 당시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일제 강점 8.15 해방 6.25 동족상잔의 비극 등 숱한 역경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살아온 우리 조국이 역경을 이겨낸 민족답게 경제적인 번영 뿐만 아니라 보다 성숙하고 보다 존경받는 국회의원 또는 지도자를 갖는 국가로 비쳐졌으면 하는 바람과 충정에서 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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