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의 첫 제자로 흥사단 활동을 통해 미주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던 고 장리욱 박사가 타계 1년 전인 1983년 LA의 한인교회에서 했던 광복절 기념 강연 육성 테입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 박사는 해방 후 귀국해 서울대 총장과 주미 대사를 역임했다.
'광복절에 흘린 눈물'.
8.15 해방은 온 겨례가 다 같이 눈물 흘린 날입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린 날입니다.
이 눈물은 감격에 찬 회개의 눈물이요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37년 전 이날 일본이 미군의 폭탄 세례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도시에 집중해 있지 말고 지방으로 떠나라는 소개령에 따라 대동강 상류 청류벽 언덕에 있는 흥부라는 촌락에 있었습니다.
이날 저녁 옆 집 청년이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숨이 차서 헐떡이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바로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해 전쟁이 끝났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갑자기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을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나만이 흘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수강산 3000리 방방곡곡에 '광복절의 눈물'이 흠뻑 내려앉았습니다. 어디서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날 흘린 눈물은 이때까지 사막처럼 메말라 황량한 불모지같던 우리의 마음과 심신을 부드럽고 기름진 옥토로 만들기에 넉넉했습니다.
과거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때까지 다른 사람에게만 쌓아오던 원한을 잃어버리게까지 했습니다.
이날 흘린 눈물은 겨레의 마음을 정화하고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37년전 흘린 눈물이 우리 민족사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사실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워지고 정화되었던 민족 정기는 오늘날에 이르러 새로워지기는 커녕 쇠퇴되고 있는 현상을 유감스럽게 바라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높은 생산력을 가진 기름진 옥토라할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옥토가 가지고 있던 양질은 바람과 비에 씻겨 다시 생산력을 잃은 메마른 땅으로 변질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 만연해 있습니다. 모두가 다시 돈과 명예 출세를 따르는 풍조가 세차게 밀려왔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교포사회는 어떻습니까. 37년 전 겨레가 흘린 눈물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까. 그 눈물의 흔적은 남아있습니까.
나는 우리 교포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비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37년 전 그 마음의 옥토를 다시 찾기위해 다시 성실히 노력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이 여기서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