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유럽은 야만족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사회 문화 제도가 파괴되면서 소위 암흑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질서와 혼란의 한 복판에서 유럽의 문화를 보호하며 유지하던 공동체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수도원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5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 동안 수도원은 문화의 중심이었으며 동시에 선교의 중심이었다. 수도원은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수도원의 기원은 일반적으로는 동방교회 특히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틴 사막 지역에서 고행적인 삶을 살았던 소위 사막의 교부(desert fathers)들의 삶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수도사의 의미인 'monk'는 '혼자'라는 의미의 핼라어 '모나코스'(monachos)에서 유래하였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기독교는 세상에 너무 노출되어 교회는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세속으로부터 거룩을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수도원적 삶을 '백색 순교'(White martyrdom)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일 수도사들이 고립된 삶만 살았다면 세상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수도사들은 때로는 다리를 놓고 길을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켰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수도사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삶은 야만족이 휩쓸고 간 유럽 대륙을 윤택한 사회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수도원은 야만족이 파괴시킨 도시의 교육과 문화의 시스템을 간직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수도원 내에 학교를 세웠으며 성경 및 고대 교부들의 작품을 사본으로 만들어 보관하였다.
그리하여 야만족이 휩쓸고 간 유럽에 문화를 지키는 파수대 역할을 하였다. 후에 일어난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문예부흥 운동은 사실 수도원 운동의 산물이었으며 중세 대학이 설립된 기원도 수도원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로 떠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 기독교인들은 세속의 현장을 피해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조용한 공간에 머무르며 주님과 교제하고 자기 성찰과 함께 영적인 에너지를 회복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떨어져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시도할 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금번 휴가철 우리 모두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잠시 분주한 세속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 090818_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