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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쇼퍼홀릭(Confessions of a Shopaholic)

San Francisco

2009.08.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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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중독은 불치병인가
영화 ‘쇼퍼홀릭(Confessions of a Shopaholic)’은 손꼽히는 ‘칙릿(chick + literature; 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으로 소피 킨셀라의 베스트 셀러 ‘쇼퍼홀릭’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예 잡지 기자인 레베카 블룸우드(아일라 피셔 분)는 쇼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쇼핑을 하다 보면 어느 때는 월급보다도 지출이 많아 크레딧 카드 빚이 계속 쌓여 간다. 급기야는 콜렉션 에이전시로부터 쫓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돼 새 직장을 구하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이 참에 평소에 가고 싶던 패션 잡지 알렛 사에서 자리를 구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고, 대신에 같은 계열의 재테크 잡지사에 취직한다. 기본적인 경제 용어조차 잘 모르는 그녀지만 쇼핑하면서 느꼈던 것을 칼럼으로 써낸 것이 호평을 받으며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레베카가 지름신(사고 싶은 게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사 버리는 사람이 믿는 가상의 신)이 강림이라도 한 것처럼 대책 없이 물건을 사들이는 걸 낭비벽이라고 비난해야 마땅해 보이지만, 실상은 일종의 정신적인 병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녀에게 쇼핑이란 유년 시절 지나치게 알뜰한 부모 슬하에서 억눌렸던 구매 욕구의 분출이자, 버거운 현실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도피처다. 오죽하면 남자와 데이트하는 것보다도 더욱 즐겁고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쇼핑 중독 환자들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보지만 고쳐지질 않는다. 쇼윈도를 지나칠 때면 마네킹들이 그녀를 그냥 두지 않는다. 마네킹과 교감이 가능한 경지에까지 다다른 그녀로서는 마네킹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살길은 다 있는 법. 역시 사랑의 힘이 천하무적이다. 직장 상사로 만난 재테크 잡지사 편집장 루크 브랜든(휴 댄시 분)과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흐르면서 그녀에게 쇼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등장한다.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백마 탄 왕자를 만나면서 레베카는 쇼핑 중독에서 벗어나고 신데렐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인다.

글쎄, 쌓인 크레딧 카드 빚에 짓눌려 파산까지 고려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질까? 주인공처럼 빚을 내서라도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꾸며야 도약의 기회가 찾아오리라고 받아들일까? 아니면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로 현실에 부딪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건전한 교훈을 얻을까? 실상은 이 영화로부터 특별한 메시지를 얻기보다는 적당한 눈요기와 판타지가 곁들여진 성공스토리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한 것 같다.


최인화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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