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 Gate라 불리는 이 구간은 물살과 수로가 위험한 난공불락의 구간으로 명성 높은 곳이다. 오랜 기간 흑해로의 진입을 불가능하게 했다. 관광객들은 대다수 미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서유럽 관광객들이며 아직 한국인을 마주친 기억이 없다.
모닝 커피를 마시는 나
#쉬자는 아내, 끝없이 쏘다니는 나
지난 ‘버팔로의 여행’ 내용이 조금 무거웠던지 여러 독자분들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스토리로 전개해 보겠다.
부카레스트(Bucharest) 루마니아에서 부다페스트(Budapest) 헝가리로의 강 여행은 풍부한 눈요기와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했다. 그러나 시각과 미각만 충족시켜주는 여행이 좋은 여행일까?
그러한 여행은 널려있다. 무지막지한 배 선상에 몸을 맡기고 떠나는 바다 여행들 모두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과 풍요로운 먹거리를 선사한다.
우리 부부는 서로간 여행의 선호도가 다르고 만족도 역시 온도 차이가 다르다. 아내는 편안한 여행(항상 “좀 쉬자”)을 선호하는 반면 나는 그 무엇인가를 계속 탐구하는 스타일이다.
리버크루즈가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의 취향을 잘 맞 추어주는 여행이라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7번이나 리버 크루즈를 동행했을리가 없다.
배는 승객들이 잠든 사이에 또다른 도시로 떠난다. 대부분의 낮 시간은 준비된 스케줄에 따라 가이드 관광을 한다.
이런 스케줄 이외에도 바다 여행과 달리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에도 나는 강 부두에 정착되어 있는 배를 떠나 끝없이 쏘다닌다.
때로는 아내도 동행하지만 주로 “좀 쉬자” 하면서 홀로 배에 남아 강가 도심을 바라보며 와인을 음미하며 여유로움을 즐긴다. 그렇다 나에게 부재인 것은 아내의 여유로움이다.
#모든 남자들을 로맨티스트로 만드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
내가 선호하는 유럽 여행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홀리데이 시즌의 유럽의 강 여행이다.
하늘에서 흰 눈이 날리면 아내 손을 잡고 분주한 포장마차 앞에서 독일 소시지(Bratwurst)에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구루 와인(Gluhwein)을 즐기며 지역 수제품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목각으로 만든 수제품들, 앙증맞은 뻐꾸기 시계, 손 뜨개질한 장갑들을 둘러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구루 와인을 들이키면 목석같은 남자분들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 눈에 사랑하는 이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여행 그런 것이 여행의 진수다. 아름다운 여행지(venues)는 세상에 널려있고 다 찾아 다닐 수도 없다.
어디를 가나 그곳에 서있는 내 여인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비운의 동유럽
유서 깊은 루마니아(‘로마의 땅’ 이란 뜻)와 불가리아(불가사람들의 땅)을 이곳저곳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 같은 길을 걸었겠지 생각했다.
‘동유럽의 파리’ 라 불리는 부카레스트는 제국열강들의 시기에 세워진 아르누보(Art Nouveau)와 신고전주의(neoclassic) 스타일 대리석 건물들의 아름다움이 소비에트 시절 공산독재 영향을 받은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우악스러운 콘크리트 건물들과 불협화음이 작렬하는 도시다.
그 브루탈리즘의 종말은 1989년 독재자와 그의 부인 차우 세스코(Ceausescu)의 총살형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동유럽을 여행하신 분들은 서유럽과 대조되는 큰 문화와 경제 차이를 피부로 실감한다.
우리는 배에 입선하기 전 이틀간 호텔에서 머물며 이 도시를 관광하기로 했다.
#5성급 호텔에서 마주친 호객행위
아내와 수많은 세계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고급 호텔 내에서 호객행위에 직면한 경우는 딱 두차례였다.
한번은 리오(Rio de Janeiro)에서였다. 그 유명한 Copacabana Palace에서 두 젊은 브라질 여인들이 내 아내 앞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나에게 호객행위를 해서 둘이 도망쳤던 기억이 하나 그리고 부카레스트 Blu Hotel 로비에서 경험한 것이 두번째다.
저녁식사 후 호털로비에서 싱글 몰트 스카치 한잔을 즐기고있는데, 현대 예술적 미의 끝을 보여주는 로비 바에 긴 다리에 짧은 검정 드레스를 입은 미모의 여인이 나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었다.
설마... 나이는 먹었지만 나도 남자다. 노골적인 젊은 여인의 눈빛을 못 알아 차릴 만큼의 숙맥은 아니다. 그녀의 시선이 그녀 앞에 놓인 와인 잔을 응시했다. 옆에 와서 한잔 사라는 것이었다.
제프 오버 하지마.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아내가 나를 떠보려고 쳐놓은 덫 아닐까?
이러다 해외에서 걸리면 끝이야. 제프 조심해! 웃기지 마. 저 여자 지금 턱시도 입은 멋진 남친과 같이 오페라 가려고 대기중 이거든. 꿈도 야무져! 괜히 제임스본드 같은 젊은 아이에게 한대 얻어 떠지지 말고! 이러한 별 쓰잘데없는 망상이 머리 위를 halo(무리) 마냥 붕 떠돌았다.
# 모차르트 21번 2악장
그런데 혹시 당신은 그런 허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기억이 있는가?
그 미모의 여인(루마니아 여성 특유의 긴 검은 머리에 우유빛 피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마치 모델이 cat walk 하듯 내 맞은편 가죽 소파에 안착했다. 손에 든 빈 와인 잔이 의미 심상했다. 윤향기의 ‘나는 어떻 하라고’ 가 떠올랐다.
멕켈란 독주가 단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검은 나비 넥타이를 한 친구가 그녀에게 오더니 그녀가 건넨 작은 쪽지를 받아서는 나에게로 건넸다.
오메가 ‘시 메스터’를 착용한 그가 내 술잔 옆으로 명암을 밀어주었다. 그 007을 닮은 친구는 영화 배우 같이 나타났다 영화 배우 같이 사라졌다.
또다시 둘만 마주한 공간. 현실을 대변하듯 호텔 로비 코너에서는 흰머리 노신사가 피아노를 잔잔히 연주했다. 그 피아니스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애잔한 소나타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 에서 이룰 수 없는 불륜을 말했음을... 쪽지 인줄 알았던 것은 명함이었다.
#Room
몸을 앞으로 내밀어 명함을 보니 어느 대학 아티스트(학생)라 쓰여있다. 그 위로 잉크 펜으로 쓴 글자가 명확히 보였다 “Room # ?”.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지막 남은 위스키 한 모금 을 쭉~욱 들이키고 일어섰다. 그녀가 내 동정을 살필 때 내 눈이 내 손가락 반지를 응시하니 그녀가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먼발치에 있는 바텐더에게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빈 와인 잔을 가리키니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룸 차지로 하고 로비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있다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살며시 채워진 와인 잔을 들어올리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보냈다.
왜일까, 프로다움에서 나오는 절제된 행동이 멋있어 보이는 것은.
#꿈이었던가
7080시절 서울 젊은 여대생들이 호텔등지에서 외국인에게 호객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주간지에서 읽으며 시대 한탄을 했던 어른들 기억이 떠올랐다.
15년 전 우리가 방문한 부카레스트는 열악한 경제 모습이 굴절된 사회상으로 나에게 보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는 나이트 팩을 가면 쓰듯이 얼굴에 붙이고는 “어디 갔었 어?” 하며 묻는다.
“응 로비에서 한잔 했어”하고 응답하니 “좀 쉬니까 살겠다, 재미 있었어?”하며 침대 위에 누워 양팔을 뻗었다.
“젊은 아가씨가 나를 따라와서 혼났어” 했더니 “아이큐, 아저씨 꿈 깨세요”한다. 꿈이었던가? 나이트 팩 사이로 올라와 붕어 입술처럼 떠있는 아내의 입술. 가벼운 키스를 해주었다.
#북한대사관과 엮여있는 듯한 한식당에서 불편한 식사
다음날 아침 부카레스트 박물관을 돌았다. 그중 트래잔 로마황제의 전쟁기념비와 혁명기념비(1989)를 돌며 고대로부터 그들이 무수히 겪었던 외세의 침략과 내세의 혼란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각 출출해왔다. 아내가 “한국식당 있을까?”하며 소녀처럼 웃는다. 어렵게 찾아낸 한식당은 간판도 없는 안가 분위기 물씬 나는 가정집이었다.
시간이 그래서인지 넓은 식당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이었다. 그런데 식당 분들의 표정과 발음이 수상했다. 음식 주문을 하는데 본질에서 떨어진 질문들을 하더니 미국에서 여행왔다고 하니 무슨 직장에서 근무하냐며 적극적으로 물었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 옆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있는데 벽에 김일성 주석과 차우셰스크가 서로 부둥켜 안고 찍은 옛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루마니아에 와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겼다. 마음은 불안한데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왔다.
급한 마음에 음식을 먹는데 아내가 “30번 씹어! 또 잊어 버렸지! 그러니 밤에 잠 못 자지”하며 또 잔소리가 시작됐다. 그렇다고 나의 속내를 말하면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어 아무 말없이 30번 씹었다.
증거를 안 남기고자 현찰로 지급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택시를 불러준다. 호텔 로비로 돌아와 현지 북한대사관 주소를 쳐보니 그 식당 근처였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 내렸다. 분단 민족의 슬픔이란 이런 것인가? 먼 나라에 여행 와서 한식 한번 하는데 이런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슬픔이 밀려왔다.
다음 스토리는 서비아(Servia)에서 만난 어린 여시인이 운 사연을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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