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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훈정 칼럼]원더우먼과 1984?

Washington DC

2020.12.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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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빈약으로 미래의 모습을 예견조차 하기 힘들어 하는 나의 성향 때문인지 SF소설에는 웬만해서 손이 가지않았다.
일반적으로 첨단과학의 발달 결과 인간생활이 어떻게 영향받게 될 것인지를 그린 작품을 SF장르 소설이라고 하는데, 희망적인 메시지보다 우리가 당면할 그 미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지게 되면, 그 때 우리는 그것을 디스토피아 SF 소설이라고 부른다.
지난 크리스마스 주말 새로 출시된 원더우먼을 보면서 왜 제목에 1984란 숫자가 붙어 있는지 궁금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난 후 갑자기 조지 오웰의 동명 소설이 떠올랐다. 그의 1984는 디스토피아 SF 소설 장르에서 손꼽히는 명작으로 1948년에 쓰여졌다고 한다.

아마도 작가에게 1984년은 아주 먼 미래였을 것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당연히 제목처럼 1984년으로 세계는 영구적인 전쟁 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상 역시 사람들은 입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외치지만 유사 이래 인간들은 크고 작은 전쟁을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전쟁같은 위기 상황이 계속 지속되어야만 국민을 통제할 명분이 생김과 동시에 이런 정치적 시스템을 긴장감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지배자 계급인 빅브라더는 시민들을 24시간 감시한다. 여기에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가 이용되는데 겉보기에 TV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민들을 조작된 통계자료로 세뇌시키기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텔레스크린은 CCTV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조금이라도 그들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잔혹한 처벌을 받게된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모두가 똑같은 슬로건을 외치고 빅브라더를 위해 영원히 일하면서 그만을 사랑하는 것 뿐이다.

아무리 봐도 뭔가 한참 잘못된 사회처럼 느껴지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초콜릿 배급량을 일주일에 20그램으로 올려준 것에 대해 빅브라더에게 감사하는 시위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어제만 해도 초콜릿 배급량을 일주일에 20그램으로 <줄인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2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조지 오웰의 1984 중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뿐이라고 치부하기에 작가가 예견한 미래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친 오늘의 모습과 너무나 소름끼치게 유사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해괴한 논리로 과거 사건에 대한 기록을 교정하고 왜곡하는 행위들이 버젓이 다수의 이름으로, 대의를 위해 행하는 일시적인 폭력일뿐이라며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처음에는 이런 억압적 분위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생기지만 어느 순간, 알면서도 모른척 넘어가던 사람들조차, 거부감 없이 이중사고를 하게 되고, 빅브라더의 메시지는 절대절명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무런 의구심 없이 충성을 다하는 시민들 덕분에 빅브라더는 편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소설 1984년의 결말은 지극히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2020년 개봉된 원더우먼에 나타난 1984년엔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영화의 주된 빌런 조차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제되지 못한 욕망이 결국엔 타인을, 아니 자신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 바램을 철회하는 품격있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영화적 환상일 수 있겠지.
하여간 어수선한 2020년 연말, 내년은 올해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거기에 덧붙여 워싱턴DC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아는 장소들을 알아보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해피뉴이어!!


황훈정 작가 / 전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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