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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카츄사(Katyusha)의 노래

‘카츄사의 노래’는 나의 18번이다.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못하는 나에게 억지로 시키면 마지못해 카츄사를 불렀다. 이 노래는 원래 가수 송민도, 주현미 등이 불러 내가 미국 오기 전에 히트했다. 나는 원래 음치였던 것 같고 노래방 출입을 하지 않아 요즘 노래를 배우지 못했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어/…/ 찬 바람은 내 가슴에/ 흰 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사는 흘러간다”

2020년 12월 12인치 폭설이 내렸다. 내가 매일 즐겨 찾던 트레일을 걸을 수 없었다. 걷는 것은 나의 빠질 수 없는 일상이다. 스노우 부츠를 신고 시도해 봤는데 눈이 무릎까지 왔다. 포기하고 바닷가 공원 주차장과 보드 웍을 걸었다. 이미 많은 발자국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트레일 입구에도 깊은 신자국이 몇 개 보였다. 보드 웍은 미끄러웠다. 크램폰을 신발에 부착했다. 자동차 타이어에 붙이는 체인 비슷했다. 눈 위나 얼음 위를 걸을 때는 미끄러지지 않아 좋았으나 그냥 길을 걸으면 댕그랑 소리가 나고 길을 긁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노타이어가 보급되기 전 체인이 얼마나 도로를 해쳤던가. 길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40여 분간 눈 속을 헤매면서 잠시나마 러시아의 설원을 걷는 기분에 젖어 들었다. Boris Pasternak 소설 ‘닥터 지바고’가 생각났다. 유리 지바고는 사랑하는 여인 ‘라라’를 찾아 썰매를 타고 광활한 눈 속을 달린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예쁜 딸이 있었다. 지바고는 라라가 남편이 있었지만, 그는 공산당원으로 ‘진정한 결혼’이 아니고 그와 라라는 운명적으로 ‘서로 부르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 지바고가 인생의 배(Vessel)라면 라라는 그의 Soul-mate였다.

카츄사가 생각났다. 나는 카츄사가 라라처럼 러시아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다. 카츄사는 Katherine의 러시아 이름이다. 카츄사 노래는 러시아 민요였다. 2차 대전, 강가에 서서 전쟁에 나간 남편, 애인을 그리며 부른 노래였다. 유튜브에서 음악을 들었더니 군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아는 한국 노래 카츄사가 아니었다. 한국 군인들이 미군과 함께 근무하는 카투사(KATUSA)는 러시아의 카츄사와 상관이 없다. 카투사는 Korean Augmentation to the US Army의 이니셜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의 합의로 창설되었다. 참전한 미군들에게 한국의 지리를 가르쳐주고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소통을 도와주는 목적이었다. 그 후 이 제도는 특권층 아들들의 특혜시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연장됐다.

폭설이 내리지 않았더라면 지바고-라라-카츄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100분간 트레일을 걸었을 것이다. 숲속에 쓰러져 있는 나무, 해변을 때리는 성난 파도, 썩어가는 나무뿌리를 보고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일찍 내린 눈이 나를 러시아로 데려다주었다. 폭설 후의 폭우는 눈더미를 무섭게 공격하더니 드디어 내몰았다. 내린 눈은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오면 가야 한다.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없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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