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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27] 정부서 보증 서줘도 돈 없어 사채 동원

전쟁물자 하역 32시간 만에 '끝'
미군 "저게 사람인가" 혀 내둘러

1965년부터 72년까지 정부가 집계 발표한 월남 진출 한국인 기술자는 2만5300여 명으로 그중에 외국 기업체에 취업한 사람이 1만5770여 명 국내 60개 기업에 취업한 기술자가 9560여 명에 이른다.

특정 기술직으로 보면 외국 업체 취업자가 국내 업체 취업자보다 많게 나타났지만 여기에 단순 노무자들을 포함하면 국내 업체 취업자가 당연히 많을 것이고 그 숫자는 3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그들이 똑같은 월남 현장에서 일하면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임금 격차를 비교하게 됐을 때 과연 어떤 파문이 생길지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간단히 여길 일이 아니었으며 그 점을 정부는 심각히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우려 때문에 한진의 대규모 인력 수출 문제가 정부 내에서도 신중히 검토됐지만 어쨌든 조중훈 회장은 문제를 풀어냈다. 그런 과정에서 조 회장이 정부에 어떤 약속을 했는지 그것은 공개하기 어렵다.

다만 장기영 부총리가 조 회장을 많이 도와줬다고 했으나 그것은 조율이 끝난 후로 보인다. 그 시점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조 회장이 장 부총리를 만나 인력 수출도 타이밍이 있는 만큼 노무자들이 적기에 투입돼 일할 수 있도록 빨리 정부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고사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백일불식(百日不食)이라는 말도 있는데 하루 작업을 못하면 백일 먹을 양식을 만들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자 정부 내에서 결국 승인하는 분위기로 선회했던지 장 부총리가 그랬다. "각하께서도 기업들의 애로 사항에 대한 현황을 보고 받으시고 빨리 도와주라는 말씀이 있으셨고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도 죄다 조 사장(조중훈) 칭찬을 많이 하니까 곧 될 겁니다. 정부가 적극 지원할 때 (한진을)많이 좀 키워보세요"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면서 장 부총리는 덧붙여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정부가 사업을 해주는 거 아니겠어요?"라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내세우려고 했다. 장 부총리가 관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한진이 정부 덕으로 돈벌이를 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인지 조 회장이 정색을 했다.

"부총리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정부가 사업을 할 줄 안다면 사업을 막는 법은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되받은 것이다. 정부가 사업을 해주는 것은 고사하고 인력 수출조차 막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오히려 일침을 가했던 셈이다.

어쨌든 조중건 상무는 100일 내에 수송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는 중압감과 초조감 때문에 잠시도 텔렉스 앞을 떠나지 못했다면서 회고를 이어 나갔다.

-인력을 송출하는 일도 수월한 게 아니었겠지만 수송 장비나 하역 장비에 투자되는 자금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그 당시 엄청난 물량이 월남에 투입됐잖아요?

"그게 사실은 굉장한 문제였습니다. 고비였다고 할 수도 있지요. 한진이 그 당시 국내에서 수송사업으로 조금 벌었다고는 하지만 트럭만 하더라도 수백만 달러어치를 사야 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금으로 그게 턱이나 됩니까.

있는 돈 없는 돈 사채까지 썼어요. 그렇게 하니까 시중에서는 조 회장이 사채놀이를 한다고 소문이 나요.

하하. 근데 사채 그거 무섭습디다. 사채가 무섭다는 건 이자 때문 아니겠어요? 우리 회장의 얘긴데 '그 놈의 사채는 비 오는 날도 없고 눈 오는 날도 없고 공휴일도 국경일도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이자가 붙더라.' 이러는 겁니다. 하하하. 그렇지만 장비는 사야 되니까 사채를 많이 동원했죠."

조 회장의 얘기를 빌리면 정부에서 쓸 수 있는 가용외화가 4700만 달러밖에 없었을 때 정부 보증으로 300만 달러를 차입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에 썼다는 것일까.

"300만 달러…? 그것도 거기에 때려 넣었겠지요. 장비가 보통 비싸야지. 정부가 보증은 해줘도 돈은 없었단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정부의 신용장 장사고 정부의 신용대출인 셈이지. 정부 힘으로 돈을 빌리는 거니까요.

그런데도 워낙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니까 숨이 탁탁 막히지요. 시간은 없고 정말 우리 회장이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거기다가 현장은 내가 책임지고 있었는데 수송은 경험이 있다지만 하역은 처음 아닙니까.

원래 하역을 하자면 부두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퀴논에 부두가 없으니 배를 갖다 댈 수도 없고 결국은 바지선을 끌어다가 물자를 하역시켜 그걸 트럭으로 다시 옮겨 수송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렇지만 방법을 찾아놓고 보니 바지선이 있나? 미쳐요. 회장한테 또 연락했죠."

-조 회장님이 참 답답하고 기가 막힌다고 하셨겠는데요?

"나 같아도 뭐 이런 것들이 있나 했을 거야 하하. 근데 희한해요. 회장은 화를 내거나 꾸짖는 게 없었어요. 대단한 양반이야. 내가 없다는 소리만 자꾸 하니까 우리 회장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거기(월남)에는 없는 것밖에 없네? 그럼 있는 건 뭐가 있느냐?' 그래요. 하하하. 그러면서 부랴부랴 홍콩에 있는 바지선을 구입해 퀴논까지 보내오는 거예요.

그게 또 보통 일이 아니라구요. 바다를 건너오는 것 아닙니까. 풍랑이라도 만나면 끝나는 겁니다. 그런 걸 보면 회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운은 타고났다 싶어요. 좌우간 96일 만에 첫 배가 퀴논에 도착하는데 참 눈물 납디다.

사람은 비행기로 오기 시작했고 하역할 장비와 트럭이 96일 만에 퀴논 부두에 도착했는데 눈물이 막 나. 그때부터 막 실어 내리는 겁니다. 그게 엄청난 물량이고 진짜 감동적인 장면이지요."

1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미군 수송부대원들이 동원돼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했던 1470t의 전쟁물자 하역 작업을 한진은 32시간 만에 끝내버린 것이다. 작업현장을 지켜본 월남 사람들은 물론 미군들도 '저게 사람들인가?' 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었다.

이호 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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