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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획을 긋는 사람들

Chicago

2021.01.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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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은 끝이 아니다. 죽지 않으면 산 사람은 살게 된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찢어도 세월은 새로운 날들을 목에 걸고 앞을 향해 간다. 지난 해는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보냈다. 매일 죽는 사람 수를 세며 감옥 같은 틀에 갇혀 아무 것에도 희망을 걸기 힘들었다. 정말이지 희망 소망 기쁨 사랑 축복 등의 단어들은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얼마나 더 작아지고 낮아지고 비굴해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비참해져야 나락의 끝에서 돌아올 수 있을까.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뒤돌아 올 수 있을까.

오늘도 코로나에 걸려 목숨 잃은 사람들의 명단을 살핀다. 이젠 슬퍼할 생각도 눈물을 떨굴 마음의 여유마저 바닥이 났다. 마음은 황폐해지고 침울해져서 남의 슬픔이 이제 더 이상 내 슬픔이 되지 못한다. 가슴은 큰 돌을 얹은 것처럼 무겁고 총알이 지나간 것처럼 구멍이 뚫어져 바람이 헤집고 스쳐간다. 삼시세끼 식사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지만 기쁘지만은 않다. 행복은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였다. 함께 어우러져 누리는 기쁨이 진정한 행복이였다.

획(畫)은 글씨나 그림에서 붓 따위로 한 번 그은 줄이나 점이다. 획은 아무나 쉽게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예에 입문해 획을 올바로 긋자면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서예는 문자(文字)를 소재로 하는 조형예술(造形藝術)이다. 피가 끓던 청춘 시절 산수화 공부하러 한 달 여정으로 한국에 갔다. 스승은 하루 5시간씩 두 주일이 지나도록 ‘한 일(一)’자만 쓰게 내버려 두었다. 미국에서 온 바보천치 제자이니 제발 진도 좀 나가 달라고 애걸복걸 사정해서 몇 획 더 배워 돌아왔는데 스승님 눈엔 결과만 챙기는 별 볼일 없는 제자였음이 틀림없다.

‘한 일(一)’자는 막대기 하나 옆으로 누인 것 같지만 점과 선, 획(劃)의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 붓에 가해지는 압력의 강약과 가볍고 무거움이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과 어우러져 미묘한 조형미가 나타난다.

먹은 오채(五彩)를 머금고 있다. 먹은 검정색이지만 농담(濃淡)•윤갈(潤渴)•비백(飛白) 등이 운필에 따라 여러 색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정교하고 오묘한 결과를 낳는다. 인생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리는 대작이다. 한 번에 획을 그어야지 그은 자리에 다시 그을 수 없다. 시간이 멈추고 숨을 멎게 해도 살아있는 한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잡은 붓을 놓쳐버리면 인생이라는 그림은 엉망진창이 된다. 절망이 허리를 움켜잡고 생을 옥죄어도 단숨에 그려야 생명의 빛을 발한다. 서예입문에서 ‘手動指作似死巳(수동지작사사사)’는 손을 움직이고 손가락으로 쓰면 글씨가 죽은 뱀 같다는 뜻이다. 젖 먹은 힘 다해 온몸으로 버티며 영혼을 불사르는 고통을 견뎌내야 엄숙한 생의 한 획을 담대하게 그려낼 수 있다.

획(畫)에 ‘자르다’ ‘베다의 뜻이 담긴 칼 도(刀 =刂)를 넣으면 ‘새길 획(劃)’이 되는데 칼자국을 내서 나눈다는 뜻이 된다. ‘그을 획(劃)’자는 ‘긋다 ‘새기다’ ‘나누다’ ‘열다’ ‘개벽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획을 긋다’라는 의미는 어떤 범위나 시기를 분명하게 구분짓는다는 뜻이다. 높거나 낮거나 유명하거나 무명이거나 우리는 모두 제 인생의 획을 긋고 산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 보다 다른 내일 위해 획을 긋고 점을 찍으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크고 작은 생의 상처와 고통 딛고 긴 호흡, 높은 기개로 옷깃 여미며 새 날 새해를 맞으리라.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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