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자 릴레이 인터뷰-4] 박용만 (주) 두산 회장
"M&A는 먹고 먹히는 전쟁이 아냐"
사는쪽, 파는쪽 모두 윈윈 게임…'얼마에 샀느냐'는 중요치 않아
지난 13일 박용만(54) ㈜두산 회장이 사회적 네트워킹 서비스(SNS)인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요즘 박 회장은 트위터에 푹 빠져 있다. '부인마마' '당빠(당연하다)' 같은 거침없는 표현에 '당근 근엄'할 것이란 선입견이 싹 달아난다.
그는 시종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이틀 전 뉴욕에서 돌아와 아직 낮밤이 바뀌지 않았다"고 인사를 했지만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위기 경영을 논할 때는 "감상적인 가치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두산은 건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삼화왕관.두산DST.SRS코리아.한국우주항공(KAI) 등을 매각했다. 이를 통해 7800억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했는데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나.
"1995년부터 지금까지 15년째 인수합병(M&A)을 해왔다. 그동안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더라. 나중엔 다소 낯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수용하게 된다. 이번 역시 과거 딜을 참고해 현 상황에 맞게 발상을 바꾼 것이다."
-2007년 인수한 밥캣의 실적 부진으로 한때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는데.
"애초부터 전혀 잘못 본 것이다. M&A와 관련해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두산이 단골로 거론됐다. 그러나 지금이니까 말하는데 우리는 다른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밥캣의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했고 이에 따라 금융권 대출 계약 조건을 맞추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밥캣이라는 '한 계열사'의 특수하고도 일시적인 상황이었다. 이를 두산 전체의 위기로 해석한 것은 과장됐다."
-소비재 사업을 대폭 정리하고 중공업 회사로 변신했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의 결과다. 95년 위기가 닥쳤다. 창업 100주년을 1년 앞두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론 전혀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엔 구조조정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는데 계열사를 매각하니 밖에서는 '얼마나 어려우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회사가 망하는 줄 알고 금융권의 오해도 많이 받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는 과정에서 M&A라는 계단식 성장 기법을 찾았다."
95년 당시 두산은 출혈 경쟁 속 증설 투자로 유동성이 최악이었다. 그해 그룹 매출은 3조원인데 적자가 9000억원이 넘었다. 결국 박용곤 당시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결단으로 신속한 구조조정에 나서게 된다. 경영권이 없는 3M.코닥.네슬레 등의 합작사 지분 매각을 시작으로 체질 강화에 나섰다.
-최근 M&A를 했다가 어려워지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대개는 기업의 미래 가치 산정에 실패해서 그렇다. 가치 산정 과정에 감상적 요소가 개입하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승부욕이 앞서면 가치 이상의 금액을 적어내게 된다.
또 인수 뒤 기업의 가치 증대에 실패하거나 피인수 기업의 기존 가치를 다른 곳에 전용함으로써 지불 가격에 해당하는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싼 값을 지불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수십 차례 M&A에서 얻은 원칙과 교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언론은 M&A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 '최후의 승자' '소화불량' 같은 수사를 쓰는데 M&A는 먹고 먹히는 전쟁이 아니다. 총칼을 들이대고 강탈하지 않는 한 말이다. 한쪽이라도 불만이 있으면 M&A는 성사되지 않는다. 서로 동일한 가치에 동의해야 한다.
이런 사고가 바탕이 돼야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두산의 M&A는 영토 확장이나 단순한 성장 욕구의 충족 과정이 아니다. 두산의 M&A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품.기술.시장.고객 등 경영자원을 보유한 회사를 공정한 가격을 내고 인수함으로써 경영의 효율을 올리는 과정이다. M&A 원칙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 규모보다 미래 가치가 커야 한다. 다음은 사업 구조 개선 및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해야 한다. 또 원천기술 등 차별화 가치를 갖고 있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우수 인재가 많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박 회장은 "M&A에 공정가격은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에 샀느냐는 주관적인 것이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할 때 주당 8350원을 써냈다. 당시 주가(3670원)에 비하면 엄청 비싼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주가가 18만원을 넘기도 했다. 인수한 뒤 추가 이익을 얼마나 낼 것인가 이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다.
100원을 쓰든 200원을 쓰든 그것은 '나'만이 가지는 가치다. 그래서 인수 이후를 예견하고 준비하는 전략적 검토가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우리도 시행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느 딜이 가장 기억에 남나.
"OB맥주 매각이다. 선대가 물려준 주력 회사라는 감상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가 조심스럽게 나온 데다 딜 자체가 워낙 복잡해 힘들었다."
-보람 있었던 딜을 꼽는다면.
"한국중공업 인수다. 2000년까지 계속 매각만 해오다 다시 성장으로 돌아선 첫 번째 딜이었다. 인수 이후 기업 가치가 가장 크게 증대된 사례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매물이 많이 나온 요즘이 M&A에 좋은 기회 아닌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려면 가치 있는 기업을 사야 하는데 가치 있는 기업은 위기를 잘 견뎌내기 때문에 매물로 잘 안 나온다. 나와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친 이후 횡보가 지속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 돌파 노하우는.
"CEO가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위기가 어떤 형태인가 얼마나 깊은가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원가 절감 등을 추구해 기업 체질을 바꿔야 한다. 둘째 경기 회복의 속도와 양상이 어떠할 것인가 주시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경기 회복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실체를 알아야 한다. 그 다음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안이한 기대나 막연한 예상 감상적 고려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두산이 위기 극복 과정에서 가장 잘했다고 여겨지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야 지극히 현실적이며 강력한 실행 방법이 나온다.
위기가 오면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사활을 걸고…' 같은 감정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즉각적인 대응이다."
-두산만이 보유한 경쟁력 요인은.
"원칙을 지키는 환경 대응력이다.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도 장점이다. 이제 우리는 곁눈질하지 않는다. 감상적 가치와는 이별했다. 하다 못해 창고를 지으려고 해도 땅이 없다. 부실한 자산 운용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WHO?
1955년 서울생. 고 박두병 두산 회장의 5남이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보스턴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유학했다. 외환은행을 다니다가 82년 그룹에 합류해 동산토건·동양맥주·두산음료·동아출판사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 3월 그룹 지주회사인 두산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햇빛발전소(solarplant)’라는 아이디로 네티즌과 트위터를 즐기고, 사내 직원과 메신저로 ‘번개 미팅’을 하는 등 소통을 중요시한다. 취미도 다양해 사진과 걷기, 수영을 두루 즐긴다. 짬짬이 ‘미드(미국 드라마)’와 개그 프로그램도 즐겨 본다.
차진용.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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