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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식 칼럼] 격투기의 카타르시스

San Francisco

2009.09.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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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격투기는 잘 모른다. 그 운동으로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집중과 인격도야를 말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왜 그런지 무술이 불편하다. 물론 맞는 것도 싫고 또 누구를 때린다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알리 같은 선수를 보면 복싱은 하루 속히 금지돼야 할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음 속으로 용납하는 격투기는 유도와 올림픽 레슬링, 그리고 씨름 정도다.

힘과 기술을 겨루는 남성적인 운동은 그 정도로 족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소룡의 영화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시리즈는 아주 재미있게 본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얻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동안 프로 레슬링이 유행하더니 요즈음은 또 새로운 격투기들이 나와서 피를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최근에 나는 링 주의를 돌아가면서 철망으로 막아 놓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경기규칙이 상당히 관대한 모양이다. 글러브도 거의 맨 주먹이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싸움이다. 그걸 보니 연전에 로마에 갔을 때 콜로세움에 있던 글래디에이터의 조각이 생각났다. 그들은 주먹에 철갑을 씌우고 어느 한 쪽이 힘이 다할 때까지 싸웠다. 귀빈석에 있는 황제의 엄지손가락이 아래를 향하면 승자는 패자의 목숨을 끊었다.

그 순간 관중들은 뭔가에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마치 자신이 한 것 같은 쾌감을 느꼈으리라. 흥분한 관중들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도 선수는 둘 중의 하나가 ‘죽기전’에는 철망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관중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들 같이 열광한다. 어린 아이들도 반쯤 미쳐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경기’에는 룰이 있고 룰에 따라서 선수들은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합법성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고 관중들은 자기들이 이룰 수 없는 경지의 정서순화를 즐기기도 한다.

중국에 도착한 첫날 첫 관광지인 전문대가(前門大街)로 접근할 때 작은 인파가 우리의 진행을 막았다. 무슨 일인가. 두 젊은이가 대로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었다. 말하자면 공짜 격투기 관전이다. 무대는 정양문(正陽門) 광장.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중국의 수도 북경의 한복판이다. 따로 마련된 관중석은 없었지만 싸우는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서 구경꾼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곤 했다. 몇 번의 주먹을 교환한 그들은 금세 우열이 나뉘었다. 약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고 흰색 상의는 마치 붉은 물감을 마구 뿌린 추상화처럼 변했다. 특이한 것은 그 ‘격투기’에는 심판이 없다는 것이고 심판이 없으니 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경기’를 보면서 거기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속 시원하게 때려 줬다는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지만 무자비하게 얻어터진 아픔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중국사람들의 후진성을 꼬집기 위함이다. 그런 태도의 저변에는 은연중에 중국사람들을 내려보는 심리가 깔려 있다. 과연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

굳이 격투기를 말하자면 우리도 중국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만 가도 우리는 아주 적나라한 육탄전을 볼 수 있다. 전기톱과 해머, 그리고 공중 부양 말이다. 또 있다. 소위 노조라는 사람들은 고무줄 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쏘아대는 경기(싸움)를 하고 있고 거리에서는 심판(경찰)이 선수(데모대)에게 얻어터지기도 한다. 룰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정양문 광장의 격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서양 언론들은 그 사건을 보도하면서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

보통 격투기에는 일정량의 카다르시스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싸움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사그러지기는 커녕 오히려 스트레스와 분노가 확대재생산 된다는데 있다.
중국과 우리는 참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흉본다고? 안될 말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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