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29] 파업의 불씨는 외국 업체와 임금 차이
파업 주동자 14명 해고·강제송환
노무자들 필요물자 군부대서 지원
그러면서 7월 30일에는 한진에서도 불상사가 발생해 파업 주동자 14명을 해고와 동시에 강제송환까지 했지만 10월이 되자 미국 비넬사 소속으로 파월했던 한국 기술자 45명이 24시간 노동 강요에 반발해 귀국하는 사태가 또 발생했다.
정부는 인력수출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데 심각성을 느끼고 곧바로 관계관들을 급파해 실태파악과 파업 주동자들을 해고시키는 강경책을 썼지만 쉽게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부총리를 중심으로 임금이 낮은 한국 기업들에는 각별히 신경 써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훈령을 내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66년 연말 재외공관장 회의를 통해 '우리 근로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국가 체면에 먹칠을 하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다소 다듬지 않은 언어를 써가며 단호하게 못을 박기도 했지만 몇몇 기업체 현장에서는 마찰이 계속됐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한진상사의 조중건 상무는 군 부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노무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땐 한국군도 전부 미군에게 빌려 쓰는 셈 아닙니까. 침대도 자동차도 총까지도 말이지. 그렇다고 당신들도 빌려 쓰는데 빌린 거 우리도 좀 빌리자고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린 민간인인데.
솔직히 우리 회장이나 나나 진심으로 노무자들 처지를 걱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정신없이 군부대로 뛰어다니면서 부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이 일하려고 온 사람들 아니오?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필요한 건 준비해가지고 와야 하는 게 원칙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정말 회장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뛰어다녔어요. 그래가지고 이범준 사령관에게 40명씩 들어가는 천막도 50여 개 빌리고 야전용 침대까지 빌렸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 사람이 침대생활 할 때가 아니잖아요. 허리 아플까 봐 등받이까지 다 빌렸다구요. 그러니까 노무자들이 필요한 건 거의 준비를 해준 셈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상철 대사도 사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한진상사 노무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것도 가만 생각해 보면 물론 해외진출 경험이 없다 보니까 그랬겠지만 그때 한진이 처음 자리를 잡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날아왔는데 비가 쏟아져도 천막이 있어요?
제대로 된 노무자들 숙소나 막사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가지고 조중훈 사장이 특별히 부탁도 해오고 조중건씨는 현지에서 쫓아다니고 그랬는데 우리 군에서 쌀도 주고 외곽지대 경비도 서 주고 물까지 주고. 군대에서 그렇게 지원을 많이 해 준 겁니다."
-민간업자인데도 군에서는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한 셈이군요.
"그때는 군관민이 따로 없어요. 다 애국자지. 민간인도 애국자 군인도 애국자. 조국 근대화를 하겠다는 그런 정신이 아주 투철해서 작전에 지장만 없다면 흔쾌히 빌려줬어요."
결과적으로 정리를 하자면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한국 노무자들의 파업 이유는 일부 근로조건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역시 임금에 있었다. 현지 공관에서는 포괄적으로 '처우문제'라고 보고했지만 당시 국내 노무자 임금이 월 평균 100달러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많은 노무자가 월남 러시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임금이 얼마였든 그것은 아무런 기준치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외국 업체 소속으로 나온 노무자들과 비교를 했다. 예를 들어 캄란 준설공사만 해도 미국 일본 호주 등 7개국에서 21척의 준설선이 작업하면서 받는 임금이 한국 업체 소속으로 나온 노무자들과 200달러에서 400달러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을 강력히 제기했다. 이렇게 구체적인 현황까지 들고 나오자 정부로서는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신상철 대사에게 긴급 훈령을 내려 최대한 신속히 수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도록 주문하면서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를 파악해 보고하라 했던 것이 정부의 당혹감을 보여주는 셈이었다.
그 때문에 파업현장으로 나간 신 대사도 애를 먹었다면서 그러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애국심에 호소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더라고 했다. 그만큼 정부의 대외 인력수출이 주먹구구식이었고 무원칙이었다는 얘기였다.
"폭염이 쏟아지는 머나먼 월남 땅에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전쟁의 화염 속으로 달려온 여러분은 누구 못지않은 애국자들이다. 대통령께서도 여러분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계신다.
모든 것이 어려운 여건에서 오직 잘살아 보자는 염원과 국가의 경제부흥을 위해 땀을 흘리는 여러분한테 결코 헛된 노력이 안 되도록 대사인 내가 모든 노력을 다해 여러분 입장에 서겠다.
이곳에서 여러분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하면 그동안 높은 평가를 받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온 한국인들이 월남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겠느냐. 여기서 파업은 한국하고 근본적으로 다르다. 처음으로 외국에 대규모 인원이 진출을 했는데 모범이 돼야지 이래가지고는 회사도 클 수가 없다. 물론 당신들이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호/객원기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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